익산시, ‘왕궁축산단지’ 모두 샀다…‘악취 주범’ 역사 속으로

신명철 호남본부 기자 2023. 12. 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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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정착촌 축사 난립, 수질·악취 등 주범 지목
“한센인 소외 아픔 극복…녹색정원도시 조성 추진”

(시사저널=신명철 호남본부 기자)

전북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인근 축산단지(한센인 정착농원). 지난 1948년 정부의 '한센인 강제 격리 정책' 일환으로 조성된 이곳은 오랫동안 호남고속도로 악취와 새만금 수질오염의 진원지로 지목돼왔다. 심지어 미국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들까지 가세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를 향해 '돼지 냄새 나는 곳으로 이전해 이미지가 구겼다'고 비아냥과 조롱을 퍼부으며 손가락질하던 곳이다.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아픔이 서려 있기도 하다. 한 많은 익산의 왕궁 축산단지가 70여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익산시가 매입을 추진한 지 13년만에 종지부를 찍으면서다.  

익산 왕궁축산단지 전경 ⓒ익산시

13년간 추진한 돼지 축사 매입 '마침표'

13일 익산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왕궁 정착 농원에 마지막으로 남은 농가와 계약을 체결, 소유권을 넘겨받아 '축사 매입 사업'을 마무리했다. 애초 5년 안에 축사를 모두 매입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8년이 지체됐다. 농가 협의에 난항을 겪었고, 매입비 부족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장장 13년이 걸린 것이다.

환경부가 국비를 투입해 주관한 왕궁 현업축사 매입사업은 사업 기간 장기화와 함께 감정평가액이 125억 원 이상 늘어나면서 지난해 좌초될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에 익산시는 해당 사업의 성공을 위해 우선 올해 추경 예산에 시비 90억 원을 긴급 편성하고, 직접 잔여 축산 농가와 매매 계약을 체결해 모든 소유권 이전을 마무리 지었다. 이로써 왕궁 정착농원은 1948년 축산 집단단지가 조성된 지 75년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 사업은 한센인 격리 정책(1948년)의 일환으로 1950년대부터 조성된 왕궁 정착 농원에 축사가 밀집, 악취가 심해지면서 시작됐다. 문제의 왕궁 정착 농원은 1948년 한센인 격리 정책 일환으로 조성됐다. 정부가 강제 이주시킨 한센인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양돈 등 축산업을 장려하면서 왕궁 한센인 정착촌을 중심으로 축사가 난립했다. 

이로 인해 악취가 심해져 일대는 물론 호남고속도로 통과 구간 차량이 창문을 내리기 힘들 정도였다. 한때 이곳에서 배출되는 오·폐수 1000톤가량이 매달 새만금 상류인 만경강으로 흘러 수질과 악취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7개 부처가 합동으로 '왕궁 정착 농원 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일대 축사 매입을 시작했다. 매입 사업은 전북지방환경청이 주도하고 전북도와 익산시가 힘을 보탰다. 협의매수에 난항을 겪었고 매입비 부족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며 204개 축사를 매입하는 데 13년이 소요됐다.

축사 매입 사업 결과 수질의 척도가 되는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95%가량 개선됐고 악취는 90% 정도 저감됐다는 게 익산시의 설명이다. 환경이 개선되자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수달까지 돌아왔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왕궁정착농원은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며 "이제는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녹색정원도시로 만들어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 복원' 재원 마련 관건

하지만 생태를 복원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재원 마련이 걸림돌이다. 애초 익산시는 영국 에덴 프로젝트를 도입해 친환경 교육 공간으로 꾸미려 했지만, 2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 등을 이유로 접었다. 익산시는 왕궁 정착농원이 올해 환경부 자연환경 복원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정부 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는 이를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체계적인 생태복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방환경청 주관으로 축사 매입 이후에 그 일대 부지를 어떻게 생태 환경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구상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업비만 적어도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돼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등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아직도 400여명의 한센인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그간 차별과 소외를 당해 온 이들 한센인들이 또 어디로 이주해 숨어 살고 있는지, 이들이 생계와 치료 대책은 마련했는지 등 한센인들의 이주·지원 등의 대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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