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형이상학적이고도 형이하학적인 [인터뷰]

윤혜영 기자 2023. 12.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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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 사진=안테나 제공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음악인이면서 화학공학자인 동시에 작가이고, 농부인 사람. 루시드폴을 감싼 외피는 이토록 다채로워서 그가 펼쳐놓는 세상 또한 너무도 다채로웠다.

굳이 정의하자면 형이상학적이면서 형이하학적이었다. 음악이라는 말랑한 장르에 농도 짙은 철학적 메시지를 가득 녹여내면서도, 동시에 그가 여러 소리들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공학적이었다. 한마디로 루시드폴은 정반대의 두 극단을 하나로 절묘하게 융화시킨 신비로움의 결정체였다.

루시드폴은 12일, 두 번째 앰비언트 앨범 '비잉-위드(Being-with)'를 발매했다. 앰비언트는 반복적이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멜로디 구조를 부각하는 인스트루멘틀 음악을 의미한다. '비잉-위드'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한 찬가로, 현존하는 다양한 소리를 재료 삼아 만든 다섯 편의 음악 모음집이다.

이번 앨범은 루시드폴의 두 번째 앰비언트 앨범이다. 루시드폴에게 앰비언트 앨범은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는 "꽤 긴 시간, 기타로 곡을 쓰는 음악만 했던 사람이었는데 2018년쯤 과수원에서 농기계에 손을 꽤 심각하게 다쳤다. 지금도 네 번째 손가락에 쇠핀이 네 개 정도 박혀 있다. 그래서 기타를 칠 수 없었다. 음악을 하긴 해야 되는데 할 수가 없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내가 앞으로 기타를 못 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서 오히려 어쿠스틱한 음악을 멀리하고 다른 음악들을 많이 듣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우연찮게 앰비언트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소리를 녹음하고, 소리 속에서 음악적 요소를 끄집어내고, 그걸 음악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그게 기타만 쳤을 때는 없었던 마인드셋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루시드폴이라는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음악적 자아가 생겼다. 하나는 독하게 소리를 탐구하는 사람, 또 하나는 노래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엔 그걸 잘 모르고 2019년에 섞어서 '너와 나' 앨범을 냈는데 그걸 들으면 잡다하다. 그 음반을 내고 나서 '이런 게 아니라 나의 두 자아를 확실히 구별해서 음반을 내야겠네'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첫 번째 앰비언트 앨범 '댄싱 위드 워터(Dancing With Water)'가 나왔다"고 털어놨다.

루시드폴 / 사진=안테나 제공


이번 앨범 타이틀곡은 '고통받는 어머니'를 일컫는 라틴어 단어인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다.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개발의 소음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공사장의 거친 소리를 모아 만들어졌다. 루시드폴은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난폭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풀꽃 그리고 어딘가 숨죽이고 있을 동물들이 마음에 밟혔다. 나는 우리가 사는 지구, 바로 그 고통받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공사장 소리를 녹음해서 컴퓨터로 옮겨서 파형을 줌인하다 보면 파형이 벌어져서 보여진다. 이때 소리를 몇 천, 몇 만 단위로 굉장히 잘게 자른다. 그걸 랜덤하게 섞어서 셔플링을 해서 다른 소리를 만들고, 그걸 다시 잘라서 셔플링하면 나중에는 원형의 소리가 없어진다. 그게 쉬운 건 아니다. 그런 과정으로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다시 샘플링해서 음정이 있는 악기화 하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루시드폴은 한 음악인으로서 듣기 싫고 버려진 소리 폐기물들을 음악으로 업사이클링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내는 폭력적인 소리들, 굉음들을 음악으로 바꾸고 싶었고 그게 나에게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정말 공사가 많다. 저희 과수원 주변도 전부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그분들을 탓하고 싶진 않다. 제가 사는 집도 그렇게 지어졌을 거다. 근데 음악을 하고 청각을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긴 했다. 과수원 일 하면서 낮 시간에 녹음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 소리를 음악으로 바꾸면서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비슷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상에 그런 소리들을 조금이라도 좋은 소리로 되돌리고 싶었다.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듣기 싫은 소리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거꾸로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했다"고 전했다.

공사장 소리 외에도 이번 앨범에는 바닷속 생물과 풀벌레, 미생물이 내는 소리 등이 담겼다. 루시드폴은 "소리를 의미 있게 경험했을 때 음악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음악일 수도, 음악이 아닐 수도 있다. 음악하면 생각나는, 피아노가 있고 기타가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방법론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뿌려져 있는 것들을 음악으로 만드는 방법이 없나. 음악한다는 게 대단하게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나라는 한 필터를 통과해서 의미 있는 소리로 바꿔내는 그런 작업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 주변에 나무가 많으니까 나무들의 신호를 받아서 음악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다. 실제 그런 모듈이 나온다. 어떤 전기 신호로 바뀌고 그 신호가 음악이 되는 알고리즘들이 있다. 많이 안 쓰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만든 곡도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식물, 곡물, 미생물은 뭐 없나 생각하다가 과수원에서 액비를 만드는데 액비가 발효하면서 나는 소리가 있다. 예전에 술 익는 소리랑 비슷하다. 그 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다. 보통 열흘 정도 발효하면 2, 3일 정도 활발하게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한 시간 정도 쭉 녹음을 했다. 백색소음이랑 비슷하더라. 그 소리가 마음을 안정시켜준다고 하더라. 또 '물 속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 해서 물 속으로 수중 마이크를 넣어 녹음했다. 사람은 들을 수 없지만 물고기들은 많이 듣지 않겠나. 저도 그 소리의 정체는 모른다. 물방울 소린지 물고기들이 내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너무 신비로웠다"고 밝혔다.

루시드폴 / 사진=안테나 제공


1번 트랙 '마인드미러(Mindmirror)'는 누구나 마음속에 거울을 품고 있다는 상상을 담은 곡이다. 현재 루시드폴의 마음 거울에는 이번 앨범 'LP'로 가득차 있다. LP가 아직 마음에 흡족하게 완성이 되지 않은 탓이다. 그는 "너무 애를 많이 먹고 있다. 전에 했던 업체에서 두 번이나 테스트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드롭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루시드폴이 LP를 고수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다. 저는 음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음반이 사라지고 음원화 됐을 때 처음 느꼈던 생각은 기억이 다 사라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는 음악 들을 때 음반 크레딧을 본다. 누가 어디서 녹음했고, 누가 피아노 치고, 어떻게 작업했는지 보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그게 다 사라진 거다. 제 음악만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손으로 느끼고 눈으로도 보고 심지어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음악으로도 들었으면 좋겠다. 그게 피지컬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이번 앨범을 한 마디로 하면요? '2023년의 루시드폴'이요."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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