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굴레 갇힌 청년들 "다시 나가고 싶은데 용기가…"
갈등 겪었던 가족·지인보다 '외부기관'에 도움 요청
"구조요청 순간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과 지원책 있어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소위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A(25)씨는 8년째 별다른 사회생활 없이 은둔하고 있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 힘든 시간을 보냈고, 고등학교 때부터 교육에 흥미를 갖지 못해 무기력이 심해졌다. 졸업 후에는 진로에 대한 방황을 거듭하며 무기력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자신은 평생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비관한다.
대학생 B(27)씨는 중학교 때부터 뉴미디어에 흥미가 있었으나,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공부를 강요받으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에서 의사가 될 정도로 성공했지만, 아들인 B씨와의 교류는 없었다. B씨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삼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점점 일상에 무기력해지며 길게는 3개월씩 방에 틀어박혔다. 방에는 음식물과 쓰레기가 쌓였다. 은둔 생활은 2년으로 길어졌다. B씨는 벗어나려고도 노력해봤지만, 결국 은둔 생활로 돌아오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 은둔 청년을 위한 시설을 찾아 입소했다.
정부가 고립·은둔청년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범정부 대책을 처음으로 내놓은 가운데, 이들 대부분은 사회적 관계와 취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좌절하고 배제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장기간의 은둔 생활을 탈피하고 싶은 욕구가 적지 않았으나, 결국 고립 생활로 되돌아가는 패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13일 한국사회복지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사회복지학에는 이러한 내용의 '청년 은둔형 외톨이의 경험과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저자 노가빈 이소민 김제희) 논문이 게재됐다.
연구팀은 최소 3개월 이상 은둔·고립 생활을 지속한 만 19∼34세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해 그 원인과 장기화에 따른 정서·행동 변화 등을 살폈다.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처음 은둔하기 시작했는데, 왕따, 성취에의 강요, 직장 부적응, 고강도·저임금 노동 등을 경험하면서 점차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번아웃)됐고 결국 사회와 멀어졌다.
대학생 B씨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인 척 연기하고, 학교도 늦게 온 만큼 잘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컸다"며 "그러다 어느 순간 번아웃되고, 기초적인 것도 안 하게 되더라. 폭식이라든지 안 씻는다든지 그런 생활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가정 안에서 정서적으로 고립되기도 하고, 직장 등 사회생활의 걱정이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의지 부족으로 평가받기도 하면서 이들은 점차 은둔하기 시작했다.
C(29)씨는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동생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대입 원서를 내 합격했으나, 애써 마련한 입학금을 아버지가 탕진해 진학을 포기했다. C씨는 한 달 가까이 울면서 보냈다. 은둔 생활이 시작된 것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때쯤이다. 이후 겨우 구한 직장에서도 오전 7시 출근과 새벽 3시 퇴근이라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적응하지 못했다. C씨는 20대 시절 중 약 4년을 은둔하며 보냈다.
그는 "(엄마가) 넌 의지가 약하다며 뭐라 하니까 회사에 들어갔는데, 너무 괴로웠다"며 "뭔가 하고 싶지도 않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을 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니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생각도 들더라"고 털어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도 가장 큰 고립·은둔 이유는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었고, '대인관계'(23.5%)와 '가족관계'(12.4%)가 뒤를 이었다.
은둔·고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성화돼 빠져나오기 어렵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깨어있는 시간에 게임, 인터넷 서핑, 동영상 시청, 음악 감상을 했고 장시간 잠을 잤다. 밤낮이 바뀌는 건 기본이고, 집 밖을 나가는 경우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관계를 아예 맺지 않을 뿐 아니라, 지인의 연락을 자발적으로 차단하기도 했다.
은둔 생활을 탈피하고자 행동 변화를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실패해 다시 고립에 빠졌다고 이들은 토로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45.6%가 일상생활 복귀를 시도했다가 재고립·은둔한 경험이 있었다. 고립·은둔 기간이 길수록 이러한 경향이 짙었다.
사회에 편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길어지는 은둔 생활 원인이 자신의 무능과 나태 때문이라는 자책 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A씨는 "(주변 사람처럼) 되면 좋은데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생각으로는 아는데, 마음이나 몸이 잘 안 움직인다"며 "취업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하루 사니까 바보 같고"라고 표현했다.
첫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21살부터 은둔하기 시작한 청년 D(24)씨는 당시 '완전히 쓸모없는 놈', '쓰레기'라는 생각에 휩싸여 시간을 보냈다.
그는 "2개월 동안 집에서 안 나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살다가 죽겠지' 등의 생각을 많이 했다"며 "끝없는 어둠 속에 있는 것 같고 다시 좀 나가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은둔 생활로 세상이 두려울 뿐이지,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욕구는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8%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특히 어느 순간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문득 찾아올 때 이러한 공포의 확대가 '구조 요청'의 계기로 작동했다.
이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주변 지인이 아닌 온라인 상담이나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 등 '외부기관'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가족 등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아 기존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외부기관의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팀은 이때를 구조의 '적기'로 보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은 어느 순간 현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며 "청년들이 구조 요청을 하는 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지원정책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극단적 사례가 발생하거나, 고립 생활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의 특성상 다양한 구조 요청 방식을 예측해 관련 기관들을 연계·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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