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장전’ 조용인이 말하는 페이커와 롤드컵
‘코어장전’ 조용인(29)은 북미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LCS)에서 활동하는 선수다. 2014년 데뷔해 한국에서 4년, 북미에서 6년간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큰 화제를 모은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월즈, 일명 롤드컵)에도 출전했다. 코어장전의 소속팀 '팀 리퀴드 혼다'(TL)가 첫 경기에서 만난 팀은 한국 리그(LCK)의 T1. ‘페이커’ 이상혁의 소속팀이자 이번 대회 우승팀이다. TL은 T1과의 첫 경기를 포함해 3경기에 패해 대회에서 탈락했다. 마지막 경기 상대는 비주류 리그로 분류되는 베트남 팀이라 더 뼈아팠다. 2017년 월즈에서 SKT T1(T1의 전신)을 꺾고 우승한 적이 있는 코어장전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을 성적이다.
한국, 중국과 달리 서구권 팀들은 수년째 국제대회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북미 리그 단 한 팀만이 8강에 올랐다. 동양권에 비해 리그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는 자조가 들린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리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북미 선수들은 페이커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은 서구권 팀과 무엇이 달라서 성적이 좋을까? 오랜 기간 국내외에서 활동해 온 코어장전에게 물었다.
대회 탈락 후 월즈는 한국에서 봤나?
아니다. 우리 경기가 끝나자마자(대회에서 탈락한 뒤) 바로 미국에 귀국했다. 남은 월즈 경기는 미국에서 챙겨봤다. 한편으론 ‘팬심’에 차서 정말 재미있게 응원하면서 봤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더 배워야 하니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연구하면서 지켜봤다. 처음 볼 때는 정말 재미로 봤고, 리플레이를 다시 보면서는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같이 볼 수 있는 동료 선수가 있으면 최대한 같이 보려 했다.
북미에서 페이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당연히 다들 너무 좋아한다. 한국에서 페이커 선수를 보는 것처럼 베테랑, 신인, 팬 가릴 것 없이 모두 너무나 리스펙트(존중, 존경)하고 있다. LCS에는 LCK를 시청하는 선수가 정말 많다. LCK 선수들은 LCS를 보지 않겠지만 LCS 선수들은 LCK를 항상 챙겨본다. 페이커 선수뿐만 아니라, 내가 알기론 어느 정도 인기 있는 LCK 선수들은 LCS 선수들에게도 인지도가 있을 것이다.
2016년 월즈 결승에서는 페이커의 SKT T1에 패했고, 2017년에는 꺾었다. 당시 기억은 어떤가?
2016년 월즈 때 우리 팀(삼성 갤럭시)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 대표 선발전부터 아래에서 쭉 올라가 깜짝 결승 진출까지 했다. 결승 상대인 페이커 선수는 월즈 2회를 비롯해, 수 없이 우승을 많이 한 선수였다. 그때 기준으로도 이미 G.O.A.T.(역대 최고)였다. 매해 너무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담도 엄청났고 벽처럼 느꼈다. 그런데 결승전 5세트까지 가서 지고 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가 이런 큰 무대 경험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모자랐지만 다시 붙어보고 싶다. 다시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우리끼리 했다. 정말 다행히 이듬해 결과가 잘 나와서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고 ‘복수할 차례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오랜 기간 경쟁했던 페이커의 T1과 이번 대회에서도 다시 맞붙었다. 새로운 감회가 있었나?
북미팀이 월즈에 가게 되면 늘 상대적으로 언더독(약자)의 입장이다. 특별히 감회가 새롭기보다는 도전자의 마음가짐이었다. 사실 북미팀에게 월즈라는 무대는 만나는 상대 모두가 더 잘하는 팀인 곳이다. 결국 중국, 한국 리그 소속 동양권팀을 이겨야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 북미 선수들은 월즈 시합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여긴다. 이 팀들을 상대로 한번 이겨서 ‘우리도 잘한다는 걸 보여주자’고 생각한다.
2018·2019년 중국팀이 연달아 월즈에서 우승하자 국내에서는 리그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한국 국내 리그에서 성적이 좋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자조가 나왔다. 북미는 어떤가?
따져보면 북미 LCS는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잘 냈던 적이 없다. 그래서 (월즈 전후) 새삼스럽게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느낌은 없다. 다만 LCS에서 우승을 하더라도 우리가 잘하는 것인지 의문은 늘 갖고 있다. 우리가 뛰고 있는 리그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나야 리그 성적이 인정을 받는 느낌이니까.
북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만큼의 인기는 따라잡지 못한다. LCS는 몇 년째 인기의 하락세를 겪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고, 성적을 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있다.
LCS의 인기 하락은 국제대회 성적이 원인인가? 아니면 외부 변수가 결합된 문제인가?
여러 문제가 많이 겹쳐 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게 근본적 원인은 맞다. 이번 대회에서 T1이 만든 것과 같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팬들에게 팔지 못했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던 ‘올드 게이머’들은 세대교체가 다가와 퇴장할 시기가 왔다. 그러나 새로운 스타들은 좀처럼 많이 나오지 않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북미 내 인기가 한국만큼 압도적이지 않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다른 게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선 FPS게임(1인칭으로 총을 쏘는 게임)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한국과 북미 두 리그에 문화적 차이가 있나?
내가 있을 때와 좀 달라지긴 했겠지만, 한국은 아무래도 조금 더 수직적이다. 연습도 다 같이 획일적으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해지는 분위기다. 미국은 코치와 선수 간에나 선수들끼리나 조금 더 수평적인 관계다. 연습 방식도 더 자유롭다. 똑같은 연습만 하는 게 아니라 선수마다 연습 방식, 연습량이 더 자유롭다. 팀에서는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구체적으로 연습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사소한 차이지만 내가 알기로 한국 팀들은 숙소에 개인 방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개인 방이 있더라도 각방에 컴퓨터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미국 팀은 대부분 개인 방을 제공하고 방마다 컴퓨터가 있다. 내가 아는 한국 팀들은 연습실에만 컴퓨터가 있으니 늘 모여서 함께 연습을 한다. 미국은 숙소에서 퇴근한 뒤 각자 집에서 게임(연습)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북미 선수는 한국 선수에 비해 연습량이 적고 프로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에 살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게 있다. ‘미국인이라서 게으르고, 한국인이라서 부지런하다’라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미국 선수 중에서도 열심히 하는 선수가 있고 한국 선수인데도 열심히 안 하는 선수가 있다. 다만 한국이 좀 더 ‘열심히 하기 쉬운 환경’이 갖춰져 있는 건 분명하다. 북미는 환경 자체가 게을러지기 쉽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했는데, 이 시간 외에는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웃음). 그 시간에 어차피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공부하는 것이다. 미국은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선수 개인의 책임감에 많이 기댄다. 사람마다 다른 프로의식, 성적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이 결과에 곧이곧대로 나온다. (선수를) 더 존중해주는 코칭스태프도 그렇고, 각자 방에 컴퓨터가 있는 환경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조금 더 편한 분위기다.
북미에는 한국에서 건너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있다. 북미의 국제대회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야간 자율학습식’ 한국 모델을 이식하려 한 적은 없나?
좀 가슴 아프지만 우리 팀이 이번 시즌 그런 시도를 하려고 했다. 한국 스타일의 환경을 조성해 열심히 하는 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스프링 때 생각보다 성적이 너무 안 나왔다. 매년 여러 노력을 했는데, 일단 환경적 한계를 좀 개선해보려 했다. 미국은 땅이 넓어 지역마다 타임존 차이(시차)가 있다. 우리 게이머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라 밤부터 새벽 사이에 게임을 하는데, 시차 탓에 온라인으로 만나기 어렵다. 우리 팀은 미국 서부에 있는데 인구는 동부가 더 많고, 동부는 서부보다 3시간이 늦다. 프로게이머들이 새벽 1시에 연습을 하려는데 동부에 있는 사람들은 새벽 4시니까 게임이 너무 안 잡힌다(대회가 아닌 개인 연습에서 팀원과 상대방은 무작위로 배정된다. ‘랭크’가 비슷한 이들이 함께 게임을 하게 된다. 프로 선수들처럼 랭크가 높은 이들은 극소수이기에 접속자가 적은 시간대에는 30분에서 1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5분 만에 바로 게임이 잡히면 탄력을 받아 연습을 계속하는데, 기다리느라 1시간에 한 게임을 하면 의욕이 잘 안 생길 때도 있다. 비시즌에 게임이 안 잡히면 프로게이머들을 모아서 따로 연습을 했다. 이렇게 하면 연습의 질이 더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북미 팀들의 시설이나 환경은 어떤가?
내가 있는 TL은 매우 좋다. 연습실이나 잠자는 곳도 좋고, 음식도 셰프가 잘해준다. 생활에 불편함은 거의 없다. 분석가들도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면 뽑아준다. 지금은 한국 팀들도 인프라가 많이 좋아졌겠지만 처음 미국에 넘어왔을 때는 생각보다 잘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수가 게임만 하면 되는 편한 환경이다.
연봉 수준은 한국과 비교해 어떤가?
이것도 사실 한국이 많이 바뀌어서 비교하기 어렵다.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미국이 대우나 연봉이 더 좋은 면이 있었다. 지금은 한국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도 너무 좋고, 선수들의 대우도 너무 좋다. 북미는 한동안 엄청 올라갔다가 지금은 조금 하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국내 리그에서 뛰다가 선수 말년에 기량이 떨어졌다는 평을 들을 때쯤 북미에 진출하려는 이들도 있다. 선수에게 괜찮은 선택인가?
사람들이 기량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 LCS로 오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열정이 떨어져서, 은퇴하기 전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는 건 지금은 어렵다. 그리 좋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북미 리그의 봉급 자체가 지금 그렇게 높지가 않다.
‘월즈 우승팀 외에 다른 모든 팀은 그 시즌에 실패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매판 증명해야 하는 일 같다. 월즈 우승팀을 제외한 모든 팀은 1년의 마지막 경기가 패배로 기록된다. 다시 자신을 증명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다음 대회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어려워진다. 그런데 막상 3, 4위전에서 이긴 선수가 결승전에서 진 선수보다 행복하다는 말도 있고. 페이커 선수조차 4번을 우승해도 다음에 게임을 지면 다시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럼 또 증명할 거고. 이걸 페이커 선수는 4번을 한 거니까….
이제 베테랑이 되었다. 게이머 수명에 대해서도 생각할 단계일 텐데.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리그에 없어졌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아직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한 열정이 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끝까지 해보려 한다.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다른 선수들과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사실 게임을 하는 데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그게 이 게임의 재미있는 면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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