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인가, 사감인가···미 명문대 총장들의 저승사자가 된 남자[시스루 피플]
‘헤지펀드 거물’ 애크먼 회장, 여론 이끌며
하버드·유펜·MIT 등 명문대 총장 퇴진 운동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 이후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진 압력을 받아온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12일(현지시간) 재신임을 얻었다. 다만 하버드대 이사회는 “하마스의 테러에 대해 하버드대는 더욱 분명하게 비난과 반대 견해를 밝혔어야 했다”며 유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비판 여론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유대계는 하버드뿐 아니라 펜실베이니아대(유펜)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겨냥한 총장 퇴진 운동을 펼쳤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유대인을 학살하자’고 과격한 주장을 펼친 일부 대학생들의 발언이 ‘학칙 위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들이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즉답을 피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결국 지난 9일 엘리자베스 매길 유펜 총장은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물러났다. 게이 총장 또한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과시한 인물이 있다. 바로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이다. 1966년 미국 뉴욕주 유대인 금융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거침없는 언사와 집요함으로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여론을 주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애크먼 회장은 엄청난 양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과 공개서한을 통해 자유와 다양성, 형평성 등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며 그의 집요함이 매길 총장 사임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가 이번에 보여준 무자비함은 사실 과거 경력에 비춰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세계적인 건강보조식품 업체 허벌라이프를 상대로 펼친 싸움을 사례로 소개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2004년 퍼싱스퀘어캐피털을 설립해 공격적인 공매도로 이름을 알린 애크먼 회장은 2012년 “허벌라이프의 실체는 불법 피라미드 업체”라며 투쟁을 진행한다. 처음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치부돼 무시당했지만, 그는 “땅끝까지 허벌라이프를 따라갈 것”이라며 불법 피라미드 영업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끝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ETC) 조사가 시작됐고, 허벌라이프는 2억달러(약 2636억원)의 과태료 철퇴를 맞았다.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터지자 애크먼 회장은 특유의 집요함을 드러냈다. 일부 하버드대생이 하마스의 기습을 이스라엘 책임으로 돌리는 성명을 발표하자 그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학생들의 취업 길을 막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아가 ‘취업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공개하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이어 하버드대에 공개서한을 보내 “게이 총장이 신속하게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지 않아 대학가에 유대인 혐오의 물결이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펜에서 매길 총장이 물러나자 “한 명은 처리 완료(One down)”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애크먼 회장은 이날 WSJ와 인터뷰하며 “사태 초기엔 모두가 유대인 혐오의 문제점에만 주목했지만, 더 큰 문제는 대학 내 이념”이라며 “이념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집요함이 역풍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엔 눈을 감은데다, 대학 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는 지적이다. 그가 대의가 아닌 사감으로 총장들을 몰아세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총장 퇴진 운동에 대해 “하마스 기습 이전부터 애크먼 회장은 하버드대에 개인적인 불만이 컸다”며 “수천만 달러를 기부한 모교(하버드대) 인사들이 그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있다는 점에 분개했다는 지인들의 증언이 있다”고 전했다.
애크먼 회장은 게이 총장이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총장으로 선출된 과정을 거론하면서 자격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애크먼 회장의 하버드대 재학시절 은사였던 데이비드 토머스 모어하우스대 총장은 “게이 총장의 자격 문제를 거론한 것은 숨겨진 메시지”라면서,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공격으로 해석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하버드대 이사회가 게이 총장에 대한 유임을 결정한 배경에는 애크먼 회장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대한 대학 측의 반감도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이번 사태로 총장이 사퇴한 유펜은 이날 래리 제임슨 의대 학장을 임시 총장으로 임명하고, 후임 총장을 임명할 때까지 임시 총장 체제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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