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과 손잡은 삼성전자, ‘1조 투자 韓 R&D 센터’ 득과 실은

황민규 기자 2023. 12. 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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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공동 연구소서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집중”
新시장 개척 필요한 ASML에 성장 기반 제공
메모리 기술 경쟁 격화 속에 삼성도 초격차 전략 절실
“철저한 계산, 양사 이해관계 맞아떨어졌다”
12일(현지시각)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의 클린룸 내 극자외선(EUV) 장비 앞에서 윤석열(오른쪽 네번째) 대통령, 빌럼-알렉산더르(왼쪽 네번째)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왼쪽 세번째)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오른쪽 첫번째) SK그룹 회장, 피터 베닝크(오른쪽 세번째) ASML 최고경영자(CEO) 등이 함께 방진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이 삼성전자와 함께 1조원을 투자, 한국에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에 나선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한 미래 반도체 로드맵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EUV 장비 판매를 확대하려는 ASML 입장에서는 세계 1,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위치한 한국이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동시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히고, D램 시장에서 경쟁사들과의 미세공정 기술력 격차를 벌려야 하는 상황이다. EUV 장비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빠르게 장비를 개량하기 위한 돌파구로 이번 협력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ASML은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 텃밭인 대만에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데 이어 한국에서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와 협력 범위를 더 넓혀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ASML이 외국 기업과 공동으로 EUV 연구소를 구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소는 국내 수도권 지역에 내년 착공 예정으로, 화성시 부지를 먼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세계 D램 1위 삼성전자, 차세대 메모리 시장서 돌파구 필요

2010년대 초반 EUV 노광 장비가 반도체 업계에 서서히 상용화되던 시기만 해도 EUV 장비는 2000억원대를 호가하는 높은 가격대와 운영 비용에 비해 생산성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당시 ASML의 EUV 장비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TSMC 등 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만 실험적으로 사용됐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1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미세공정부터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EUV 장비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수년간의 장비 개량과 수정을 거쳐 7나노 공정에 세계 최초로 EUV를 상용화했다. 이후 TSMC 역시 EUV 장비를 기반으로 7나노 미세공정 안정화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EUV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부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에 그치지 않고 2020년 업계 최초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도 EUV 공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D램 미세공정이 10나노 중반(1y)에 접어들면서 기존 멀티패터닝 방식에 따른 공정 스텝 수 증가로 생산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 최초로 14나노 D램 생산 공정에 EUV를 적용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새로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 현재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10나노 초반대 공정 일부에 EUV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 마이크론도 EUV 장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삼성전자와 ASML의 EUV 연구소 공동 투자에 득과 실이 명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D램에 EUV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해 온 제조공정 노하우를 ASML과 일정 부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타사와 1대1로 공동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향후 ASML이 다른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EUV 장비를 공급할 경우 삼성이 축적해온 레시피가 경쟁사로 흘러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삼성전자가 ASML과 EUV 공동 연구소 설립에 나선 것은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기술력과 생산성 격차를 크게 벌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용 EUV 장비 대수는 삼성이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라며 “D램에서 EUV 장비의 활용 비중이 높아질수록 삼성 D램의 성능, 생산성이 이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ASML, 삼성과 협력 발판으로 메모리 시장으로 영역 확대

삼성전자와 ASML 관계자는 이번 발표와 함께 양사의 공동 연구개발이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춰보면 반도체 업계의 슈퍼을(乙)로 불리는 ASML은 오히려 이번 공동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많다.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삼성전자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로 한정돼 있는 고객사 기반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체로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ASML의 EUV 장비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 TSMC, 인텔 정도로 한정돼 있다. 7나노 이하 선단 공정의 칩을 양산하는 기업이 사실상 세 기업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EUV 장비로 메모리 생산 공정을 안정화할 수 있다면 기존에 메모리 기업들이 사용하는 불화아르곤(Arf)광원 기반의 장비 대신 EUV 장비를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존 3개 기업뿐 아니라 SK하이닉스나 미국 마이크론 등 다수의 메모리 기업을 새로운 대형 고객사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이번 투자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칠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이용필 산업통상자원부 첨단산업정책관은 “이번에 EUV 공동 연구소에 들어오는 장비는 현재 개발된 장비가 아닌 새로운 차세대 EUV(하이 NA EUV)로, (한국에) 최초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며 “반도체 기술 경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기술 개발에 나서 경쟁사에 비해 기술 확보와 공정 투입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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