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 재량 무제한 아냐"…법원이 본 '이스타항공 채용 부정'

임채두 2023. 12. 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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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인사 직원 업무 구분…역할 침해하면 '업무방해' 규정
재판부 "공정 훼손 심각한 사건"…이 전 의원, 징역 1년 6개월
이상직 전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승무원 수십명이 부정 채용된 이른바 '이스타항공 채용 부정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사기업의 채용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재량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넓힐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사기업의 재량, 기업 임원의 재량이 '공정'의 가치보다 우위에 서면 사회 기본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모두의 상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주지법 형사4단독 김미경 부장판사는 13일 이 사건을 판결하면서 사기업의 주체별 업무를 나열했다.

먼저 대표이사는 신규 직원 선발 업무 총괄, 인사본부장은 서류 전형 및 면접 업무 총괄, 인사팀장은 서류 접수 및 전형별 합격자 선별, 인사 팀원은 채용 전형 진행 등으로 역할을 구분했다.

그러면서 김 부장판사는 "최종 인사권이 대표이사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인사담당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있으므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이사나 임원 아래 인사담당자들 역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기에 그들의 역할은 보편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채용의 자유가 보장된 사기업이라고는 하나 그 재량 범위를 무제한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며 "공개 채용 절차에서는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돼야 하고 채용은 공정한 경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스타항공 채용은 직업 활동의 자유, 경영상 필요한 판단"이라던 이상직 전 의원의 주장은 김 부장판사의 공정 논리로 산산이 무너졌다.

사회 발전의 기본 작동 원리를 이처럼 짚어낸 김 부장판사는 공정을 훼손한 이 전 의원, 최종구·김유상 전 이스타항공 대표의 죄목을 읊었다.

그는 "이상직 피고인은 채용 일정이 시작되면 김유상 피고인에게 수시로 (외부에서 청탁받은) 지원자의 이름, 생년월일, 접수 번호 등을 기재한 메모를 주거나 카카오톡 메시지, 전화 통화로 전달하기도 했다"며 "이때 피고인들은 추천인이 너무 많아 추천인란을 별도로 만든 엑셀 파일을 생성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인사담당자들은 합격시킬 지원자의 명단을 최종구, 김유상 피고인으로부터 전달받았다"며 "주로 (특정 지원자를)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거나 형광펜으로 표시하는 등의 방법이었다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 전 대표가 이 전 의원이 추천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가 추천한 것처럼 특정 인물을 합격자 명단에 끼워 넣었다가 발각된 일화도 법정에서 언급됐다.

이스타항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합격권 밖에 있던 지원자가 부당하게 합격했고 합격권 안에 있던 지원자는 불합격으로 변경됐다"며 "이는 공개 채용의 취지를 몰각(아주 없앰)시키고 사회 통념상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스타항공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던 이 전 의원이 대표이사의 '상왕'으로 군림한 사실도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상직 피고인은 이스타항공에 재직하지 않던 시기에도 회사 월간 회의, 주간 회의에 부정기적으로 참석했다"며 "최종구, 김유상 피고인을 통해 이스타항공의 채용을 전형 단계별로 보고받고 합격자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종구, 김유상 피고인은 (이상직이) 이스타항공 회장으로 재직했던 시기는 물론이고 국회의원을 지낼 때도 (회사의) 인사와 관련한 최종 결정을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양형 사유를 모두 종합해 이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 최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 김 전 대표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전 의원 등은 2015년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서류 전형과 면접 등 채용 절차에서 점수가 미달하는 지원자 147명(최종 합격 76명)을 채용하도록 인사담당자들에게 외압을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서류→1차 면접→2차 면접 순으로 진행되는 채용 과정마다 피고인들이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압력을 행사한 불공정 정황을 확인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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