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왜 의사·병원만 책임지나"…119 저격한 의료계, 왜?

박정렬 기자 2023. 12.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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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의 신의료인]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응급실 진료 지연으로 대기하고 있다. 2020.8.27/뉴스1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기 위해 119 구급대 등 소방청이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제기된다. 응급 환자에게 모든 도움을 주겠다며 상담·신고 업무를 119에 통합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응급실 뺑뺑이'의 책임을 여전히 의사와 병원만 지는 것에 의료계의 불만과 피로감이 팽배한 실정이다. 119의 전문성 강화와 환자 상담, 병원 간 전원 체계 정비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필수 의료'인 응급의학과 이탈이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협 "119 전문성 부족이 '응급실 뺑뺑이' 원인"
우봉식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의협 계간지 '의료정책포럼'에 실린 필수의료 위기와 의대정원 시론에서 "응급실 뺑뺑이는 과거 우리나라에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을 담당하는 1339시스템이 119로 통합·폐지돼 생긴 일"이라고 진단했다.

우 원장에 따르면 1339에서는 의사인 공중보건의가 환자의 경·중증 여부를 분류한 후, 응급처치와 다음에 이어지는 후속 치료(배후 진료)까지 고려해 의료기관을 배정·전원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119가 이를 가져간 뒤로는 "전문성이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의 경·중증 구분 없이 환자를 대형병원으로만 보내니 정작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게 우 원장이 바라보는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 119 구급대 등 구급차가 줄지어 서있다. /사진=박정렬 기자

소방청은 즉각 반발했다. 소방청은 지난 7일 설명자료를 내고 "과거 1339의 주요 업무는 응급환자 분류·후송이 아니라 안내·상담, 응급의료기관평가 지원, 정보관리 및 제공"이었다며 "119구급대는 자격·면허를 소지한 전문 구급대원이 응급환자를 5단계로 평가·분류해 치료할 수 있는 적정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이어 "응급실 환자 중 119구급대를 이용한 비율은 16.4%에 불과하다"며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려면 먼저 '워크 인(walk-in, 직접 찾아오는 경증) 환자'의 이용을 자제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년 전 "원스톱 응급 처치" 홍보한 소방청, 현실은
우 원장이 시론에서 언급한 1339는 현재는 질병관리청 콜센터 번호로 쓰이지만, 11년 전까지만 해도 소방청의 119와 함께 응급환자를 책임지던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정보센터 번호였다. 일반인·119 구급대를 대상으로 의료 상담과 병원 안내를 총괄하는 관제센터로 공중보건의(의사)·간호사 등 10명 이상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응급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응했다. 2001년 개설된 이후 2012년까지 폐지되기까지 병원 간 전원 실적은 연간 2만여건에 달했다.

그러나 상담과 신고 업무가 이원화돼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1339는 119로 흡수 통합됐다. 당시 소방청은 "1년 365일 24시간 응급환자에 대한 신고접수 및 출동, 안내·상담, 응급처치지도 및 이송병원 안내 등 현장에서 병원 도착까지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게 됐다"며 "국민들은 응급환자 발생 시 119만 누르면 모든 도움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홍보했다. 담당 업무가 많아지면서 소방 인력은 2012년 3만8850명에서 2022년 6만6659명으로 2만8000여명 증가했고 예산도 이와 비례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신고·상담의 통합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전반적인 분석이다. 1339를 흡수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19는 신고와 이송을 주로 담당할 뿐 '응급실 뺑뺑이'와 직결되는 상담, 병원 간 전원 업무는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23 소방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모두 181만7535건의 업무를 처리했는데 이 중 상담과 관련한 응급처치 지도는 40만9075건, 질병 상담은 30만7564건으로 둘을 더해도 병원과 약국 안내(의료상담, 88만422건)보다 적었다.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상황실이 병원을 연결해주는 '이송병원 안내' 실적은 3만7405건으로 전체 업무의 2%에 불과했다.

일반인은 응급상황이 아닌데 의료 상담을 위해 119에 신고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느껴 꺼린다. 심지어 국민의 절반 이상은 119가 응급의료 상담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올해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공개한 '2022년 대국민 응급의료 서비스 인지도 및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녀 6000명 중 42.1%만이 119가 의료상담이 가능한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신고자가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으면 굳이 119를 부르거나 대형병원 응급실을 제 발로 찾아가지 않는다"며 "119가 고생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응급의료 체계를 일원화한다며 1339를 통합하고 예산·인력을 대거 확보한 소방청은 여전히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급 환자, 강제 수용보다 '최종 치료' 가능해야
최근 대구시와 경남도는 119와 연계해 상황실을 운영하며 응급환자를 수용할 병원을 강제로 지정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대구시는 119가 병원을 지정한 결과 '응급실 뺑뺑이'가 26% 감소했다며 홍보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중증 응급환자의 응급실 수용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응급실 강제 수용은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의학과 박준범 교수는 "응급 환자는 최종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에 최대한 일찍 도착해야 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며 "속도만 앞당긴다고 해서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119의 강제 수용에 의료계가 반발하는 배경에 '병원 간 전원' 문제가 있다. 119구급대와 병원은 환자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 119구급대는 응급·준응급·잠재응급·기타(대상 외, 사망 추정)로 분류하는 반면 병원은 환자분류체계(KTAS)를 적용해 1~5단계로 구분한다. 119가 응급(비응급) 환자로 분류해도 병원 입장에서는 비응급(응급) 환자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응급실 과밀화다. 경증 환자로 붐벼 정작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응급실을 찾아 길 위를 헤맬 수 있다. 후자의 경우 해결 과정이 좀 더 복잡하다. 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외과처럼 실제 환자 치료를 책임질 배후 진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야 한다. 치료할 병원을 찾기 위해 119 구급대와 똑같은 일을 응급의학과 의사가 다른 병원 의사에게 한다. 응급 환자를 처치하면서 병원을 수배하는 게 쉽지 않다. 수술 등 처치가 늦어지면 환자가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되거나 심한 경우 사망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환자를 받은 병원과 의료진이 의료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즉 병원 간 전원이 어려우면 응급실도 119 구급대의 진입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준범 교수는 "119의 응급환자 분류가 일부 잘못되더라도 빠르고 효과적인 병원 간 전원 시스템이 있다면 환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강제 수용만 앞세우면 되레 응급실 과밀화를 부추기고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는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한 수도권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 환자를 보면서 병원 간 전원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데 여기에 의료 소송 위험까지 동반되면 응급의학과 지원율이 줄고 지금 있는 의사마저도 결국 병원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뉴스1)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 현장을 찾아 의료진과 대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3.4.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료계 일각에서는 '응급실 뺑뺑이'의 해결을 위해 119의 신고, 상담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과거 1339와 같은 전담 조직이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NHS111, 일본의 #7119처럼 상담 전담 번호를 따로 만들면 불필요한 119 출동을 줄이는 동시에 병원 간 전원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환자 안전에 이득이라는 논리다. 조석주 교수는 "상담이나 병원 간 전원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라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과 지역 응급 현황을 잘 아는 의사가 주축이 돼 환자 상담과 수용, 전원을 총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대구·광주·대전 4개 지역에 이송 병원 선정과 병원 간 전원을 담당할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만들 계획이지만 세부적인 운영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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