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세상의 모든 소리로 공존을 말하다” [인터뷰]

2023. 12. 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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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앰비언트 음반 ‘비잉-위드’ 발표
수년간 채집한 소리로 말하는 ‘공존의 삶’
루시드폴은 지난 몇 년간 세상의 모든 소리를 채집했다. 그 소리들을 한 장의 앨범에 담았다. 앰비언트(ambient) 연주 음반 ‘비잉-위드’(Being-with)다. [안테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년 정도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 자체에 대해 알게 된 건 없는데 점점 제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 과수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작은 공간이 우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난 몇 년간 세상의 모든 소리를 채집했다. 작은 벌레들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 새들이 나무에서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귀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 모든 소리들을 한 장의 앨범에 담았다. 앰비언트(ambient, 자연이나 악기의 소리를 활용해 잔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전자음악의 한 종류) 연주 음반 ‘비잉-위드’(Being-with). 하이데거가 쓴 ‘공동 존재’를 영어로 번역한 말이다.

최근 서울 종로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철학에는 조예가 없지만, (공동 존재는) 지금 내가 가장 깊게 느끼는 화두”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발매한 새 앨범 ‘비잉-위드’는 낯선 음악이다. 서양 음악의 평균율에서 벗어나 있고, 3분 미만의 K-팝과 비교하면 대서사시에 가깝다. 물론 앰비언트 음악은 노랫말이 없다. 음반은 음악인지 소리인지 알 수 없다. 그가 앰비언트 음반을 낸건 2021년 발표한 ‘댄싱 위드 워터’(Dancing With Water) 이후 두 번째다.

루시드폴은 “앰비언트 음악은 익숙한 12음계, 피아노와 기타와 같은 익숙한 악기가 만드는 음악, 기승전결을 가진 3~4분 길이의 기존 음악에 물음표를 찍는 음악”이라며 “누군가에겐 소리로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음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는 ‘고통 받는 어머니’라는 뜻의 라틴어다. 1년 내내 굉음이 그치지 않는 공사 현장에서 채집한 소리가 음악이 됐다. 그는 “제주는 1년 내내 공사를 한다”며 “포크레인 소리, 그라인더 소리, 철근 떨어지는 소리 등 공사장 소리를 채집해 듣기 괜찮은 소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른바 ‘소리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한 음악’인 셈이다.

루시드폴의 앰비언트(ambient) 연주 음반 ‘비잉-위드’(Being-with) 커버[안테나 제공]

음반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완성됐다. 여덟 마디의 모티브를 반복하며 피아노의 조율로만 변화시킨 ‘미분음 탐구’(마인드 미러)가 이어지고,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한 ‘G선상의 아리아’를 8배로 늘인 뒤 소리를 잘게 잘라 새로운 음악(Aviiir)을 만들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린 루시드폴의 기존 음악을 떠올린다면, 완전히 색다른 시도다.

“노래는 언어와 결합하는, 굉장히 희한한 존재예요. 음악을 보통 비언어적 언어라고 하는데, 제가 느끼기엔 가장 비음악적인 음악이죠. 저의 경우엔 이런 곡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완성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노래는 한 번도 전달받은 적 없는 택배 상자처럼 와요. 반면에 앰비언트는 밭을 갈듯이 소리를 다듬고,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집 같아요.”

음반에 담긴 소리의 종류가 다양하다. 그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고, 미생물이 발효하면서 내는 소리, 물 속의 소리처럼 듣기 어려운 소리도 담았다”며 “사람도 있고, 비인간도 있다. 그것은 동물일 수도 식물일 수도 있다. 소리를 모아보니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들의 ‘함께 살기’가 앨범을 관통한 메시지가 됐다”고 말했다.

‘공존’은 루시드폴이 하루 아침에 관심을 둔 주제는 아니다. 2007년 발표한 ‘국경의 밤’ 앨범에서 인간의 존재와 존재들의 관계를 고민했던 그의 시야는 서서히 세계로 확장됐다. 제주로 내려가 친환경 농법으로 귤 농사를 짓고 살아온 시간이 그의 고민을 뱉어낸 계기처럼 보인다.

루시드폴 [안테나 제공]

“(농사를 짓기 전인) 10년 전만 해도 귤이 어떻게 달리는지, 귤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도시 키즈였어요. 그 때의 전 지금의 저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예요.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농사를 지으며 환경, 생명, 공존에 대한 고민으로 합쳐진 것 같아요.”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고민은 음반 제작 방식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음반을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공해가 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며 “플라스틱 조각이 아닌 페트(PET) 소재에 종이 라벨도 붙이지 않은 투명 LP를 만들어 재활용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았으나 이번엔 노이즈 때문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론 음악에도, 음악을 내놓는 결과물에도 공존의 가치를 담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고, 편리와 트렌드를 강요받는 시대에 루시드폴의 삶은 자꾸만 거꾸로 향한다. 버튼 하나만 눌러도 가상 악기가 쏟아지는 지금 굳이 ‘소리 채집’에 나서 자르고 이어 붙이는 ‘수공예 음악’을 만들었다. ‘미리듣기’와 ‘스킵’이 만연하는데도 곡의 길이가 최장 한 시간으로 더 늘어났다. 화려한 ‘디자인의 예술’로 불리는 음반 표지가 주목받기에 좋지만, 그는 투박한 사진 한 장을 앨범에 실었다. 나무가 베어진 단면이다. “LP 디스크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나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느낌의 사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나의 삶이 평균 값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것이 가끔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요. 거꾸로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삶일 수도 있고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귀에 잘 들리는 전형적인 노래가 있다면, 단지 그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이의 제기를 하게 돼요. 저의 이런 음악도 세상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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