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산악인으로! 남미 최고봉 도전기 1회
"넌 어쩌다 대학 산악부에 들어갔어?"
주변 사람들이 내게 자주 건네는 질문이다. 나는 친구 따라 왔다. 그저 같은 학과 동기인 수지를 따라 가입했다. 다른 산악부 사람들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왔다'거나 '볼더링을 즐기기 위해', '부모님이 산악회였던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등 각자의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선배들과 산을 다니면서, 가입을 후회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아대 대학산악부에 가입하기 전엔 산 정상의 정상석 조차 본 적 없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 산이란 존재는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자꾸 산에 오게 되는 걸까? 같이 원정을 가는 영남대 기빈이 형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산에서 뭐가 제일 좋냐", "왜 귀한 주말에 산에 오냐"고 물었다. 나는 당장 대답을 꺼낼 수 없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많은 이유들이 나를 산으로 불러들였다. 처음엔 사람들이 좋았고, 생전 처음 탔던 바위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좋았고, 올라서야만 보이는 산의 특별한 풍경도 좋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는 힘들고 지치지만 올라가서 작은 텐트 안에서 도란도란 앉아 오늘 산행이야기든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차가워진 몸을 데우며 떠드는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이런 정을 산에서 쌓다보니 산에 오는 이유가 점차 늘어났다.
올 여름 일본 북알프스 원정
동기 수지의 제안으로 올해 여름,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왔다.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인 오쿠호타카다케(3,190m)를 포함해 3,000m이상의 산들이 이어져 있는 고산 지역이다. 우리는 3박 4일 동안 3개의 봉우리를 종주하는 일정이었다.
원정 기간 동안 힘들고 지칠 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주변 풍경을 보며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너무 예쁜 풍경들이 있었다. 내가 걸어온 산길을 뒤돌아 보면서 '벌써 내가 이만큼 올라왔구나'하는 뿌듯함에 신이 났었다.
훈련이든 원정이든 숨이 차오를 때면 꾹 참고 '한 발만 더!'를 속으로 되새기며 발을 하나씩 떼다보면 어느새 나는 멀리 와 있었다. 멀어서 갈 수 없을 것 같던 정상도 인내하고 걷다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힘들었지만 하산할 때쯤엔 힘든 기억은 벌써 미화되고 추억이 되어 있었다.
7대륙 최고봉 등정까지 하나 남은 동아대 산악회
부산 동아대학교 산악회는 2008년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즈(5,642m) 등정으로 시작해, 2010년 아시아 대륙 최고봉이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2012년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2014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62m), 2015년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4,884m), 마지막 2016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등정으로 6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23년 12월 남극 최고봉 빈슨(6,962m) 등정을 통한 7대륙 최고봉 피날레와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62m) 재도전을 통한 졸업생&재학생 합동원정에 나서게 되었다. 나는 아콩카구아 YB(재학생) 원정팀에 운 좋게 함께 하게 되었다.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경험하며, 무엇이든 즐거웠고, 좋은 기억만 가득했다. 그랬던 탓인지 아콩카구아 원정에 대해 이야기 들었을 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담되는 원정 비용 탓에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인 남미까지 가는 만큼 원정 비용이 적지 않았고, 내겐 현실의 벽이었다. 대학산악부 활동한지 1년이 넘지 않은 나는 체력이나 경험 면에서 자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원정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고, 확정하고 나서도 내가 가는 것이 맞는 건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아콩카구아를 왜 가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가고 싶은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마음이 끌린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아콩카구아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설렌다. 이렇게 설레는 도전이 또 있을까싶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서 얼마나 많은 자책과 후회를 할 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써는 가슴 설레는 일이 우선이다.
이번 도전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래서 선택한 것도 있다. 선배님들은 "원정 한 번 다녀온 기억은 평생 간다"고 했다. 이번 원정 추억이 어떻게 결론 지어지던, '아콩카구아도 다녀왔는데 이것도 못하겠어?'라며 코웃음 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5명 모두 아콩카구아에서 웃는 얼굴로"
출국 예정일인 2023년 12월 22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개인 장비와 공동 장비, 식량이 계획대로 잘 준비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인, 패킹 시간을 가졌다. 학교에서 패킹을 준비하던 중 졸업한 동아대 산악회 88학번 조벽래 선배가 찾아오셨다.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선배님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조벽래 선배는 이번 남극 원정과 아콩카구아 원정대원이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해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5,642m) 등 다수의 고산을 등정하셨기에 우리 산악회에서 등반대장으로 통한다. 많은 고산등반 경험을 가진 대 선배인 셈이다.
선배는 만날 때마다 원정에 대한 조언과 값진 경험을 나눠 준다. 조벽래 선배는 12월 2일 출국하여 남극 최고봉 빈슨(4,892m) 등정 일정을 다 마친 후, 아콩카구아 OB(졸업생)원정대에 합류하는 일정 때문에 오늘이 한국에서 보는 마지막 날이다. 다음엔 "아콩카구아에서 보게 될 것"이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경험과 조언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조언을 끝으로 "5명 모두 아콩카구아에서 웃는 얼굴로 보자"던 선배 말에 마음속에서 울컥했다. 내가 선배님들을 볼 때면 항상 단단함이 느껴진다. 뭐든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함 말이다. 뭘 결정하든 불안정한 내가 봤을 때는 멋있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출국까지 잘 준비해 팀원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아콩카구아를 온몸으로 느끼고, 스스로와 부딪혀 보기도 하면서 나 스스로가 단단해져 왔으면 한다. 산악부에 들어오기 전에는 등산에 대해, 사서 고생하고 위험에 처하는 것이라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고산 등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도전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위한 도전이다.
글 사진 여정윤(22세) 부산 동아대산악회 아콩카구아 원정대원
<소녀에서 산악인으로 연재는 일주일 단위로 인터넷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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