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자살 원인 1·2위는 ‘이것’···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1위 ‘괴롭힘’ 2위 ‘과로’…연차 낮을수록 심각
“괴롭힘·노동시간 관련 제도 후퇴시키면 안돼”
업무와 관련된 직장인 자살(자살 산재)의 절반 이상은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저연차일수록 괴롭힘과 과로가 미치는 영향이 컸다. 괴롭힘 판단기준 강화나 ‘주 69시간’ 노동시간 유연화 등 제도 개편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이양지 노무법인 삶 공인노무사는 2022년 근로복지공단이 조사한 자살 산재 관련 업무상질병판정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노무사는 지난해 자살 산재 신청 97건(명) 중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입수할 수 있는 85명을 살펴봤다. 산재 승인은 39건, 불승인은 46건이었다. 산재 신청자 85명의 근속 연수를 보면 ‘5년 미만’이 48%, ‘5년 이상~10년 미만’이 18%, ‘10년 이상’이 34%였다.
산재가 승인된 39명의 자살 사유 중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이 33%로 가장 많았다. ‘과로’가 26%, ‘징계·인사처분’이 21%, ‘폭행’이 5%로 뒤를 이었다.
사유를 다시 근속 연수별로 보면,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에서는 10년차 미만이 69%로 다수를 차지했다. ‘과로’에서는 10년차 미만이 80%에 달했다. 저연차일수록 괴롭힘·성희롱과 과로를 강요받고 죽음에 내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10년차 이상 직장인은 ‘징계·인사처분’에서 50%로 비중이 높았다.
자살 산재 신청 건수 중 직장 내 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율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전 20%에서 시행 이후 27%로 올랐다. 여전히 자살 산재 신청 건수(공무원·교직원 포함)는 경찰청이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인한 자살’로 분류한 건수보다 적었다. 경찰청 통계 대비 자살 산재 비율은 2018년 24%, 2019년 16%, 2020년 23%, 2021년 37%, 2022년 36%였다. 이 노무사는 “전체적 비율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은폐되거나 산재를 주장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살 산재는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권남표 하라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가 15명의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분석한 결과, 한 10년 차 직장인은 노동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고도 사측이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고통받았다. 입사 후 3개월 만에 괴롭힘·성희롱을 호소하며 숨진 사례도 있었다.
한 연구원은 8명의 인원이 계획된 프로젝트를 혼자 맡아 하루 70~100통의 전화를 하며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 신입사원은 플랜트 설계업무를 1주일 동안 72시간 10분 수행하다 숨졌다. 근거 없는 저성과자 지목과 퇴사 종용에 세상을 등지거나 입주민의 과도한 민원으로 세상을 떠난 아파트 관리소장 사례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2년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연구용역을 두 차례 발주하는 등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 1회·3개월 이상 지속’을 요건으로 두자는 주장이 연구용역보고서와 정부 후원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노동계는 괴롭힘 판단기준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배나은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반복성과 지속성 기준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괴롭힘 판단 허들(담장)을 높여서는 안 된다”며 “‘네가 당한 것을 어지간하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확산하면 피해자들이 신고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닌 절망과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권 노무사는 “현행 근로시간 형태에서도 장시간 노동과 강한 업무 강도로 자살하는 사례가 발견되는데,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은 타당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여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위원들이 괴롭힘의 진위를 판단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조사 결과가 나온 후 심의 일정을 잡는 등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며 “괴롭힘이 단지 나쁜 상사를 잘못 만난 ‘개인의 불운’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괴롭힘의 조직적 요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질판위 안팎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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