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에 한국 끌어들이는 미국…반도체 수출통제 동참 언급

[미-중 패권 전쟁]

엘렌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12일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반도체·슈퍼컴퓨터·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 체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첨단기술 취득을 막기 위해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엘렌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현재의 다자 수출통제 체제인 바세나르체제 등은 기술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간다면서 새로운 수출통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1996년 출범한 전략 물자 수출통제 체제인 바세나르체제에는 42개국이 가입해 있는데, 러시아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러 제재 수단으로 이용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이어 “우리는 수출통제를 혼자 할 수 없다”며 미국과 동맹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출통제 체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의 예를 들며 그 분야의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갖춘 소수 국가들이 수출통제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도 새로운 수출통제 체제 참여 대상으로 논의되냐는 질문에 “한국은 확실히 그런 나라이며, 한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런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새 수출통제 체제는 중국을 배제하냐는 질문에 “싸움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첨단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등의 수출통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기술을 이용해 “중국이 군사 기술을 현대화할 수 없어야 한다”는 등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내비쳤다.

콘퍼런스 패널로 나온 곤잘로 수아레스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 부차관보도 “한국 같은 역내 국가가 생산된 민감한 품목이 중국의 군사 현대화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국의 수출통제 협조를 강조했다.

미국이 새 다자 수출통제 체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자국의 독자적 수출통제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미국 기업만 손해를 본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 등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견제 효과를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이런 틀을 만들고 이용하려고 하면 첨단 기술 분야를 놓고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중은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으로 갈등 확산을 막자는 데 합의했지만 미국 쪽의 중국 견제 의지는 이어지고 있다. 이날 미국 하원 중국특별위원회는 중국으로부터 무역 최혜국대우 지위를 박탈하고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하라는 등 약 150개 권고 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중국특위는 중국 자본이 소유한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사업 중단 검토도 권고하는 등 미-중 경제 관계의 대규모 조정을 주장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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