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황금빛 영남 알프스를 화폭에

김석환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2023. 12.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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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산 정상석과 함께 찍은 필자.

새벽 5시 30분 잠에서 깼다. 여러 물건을 챙기며 차량에 오를 준비를 했다. 숙소는 복층 구조에 층마다 화장실이 있어 편리했다. 어제 오후 8시 30분에 이곳에 들어와 하룻밤을 묵었다. 오래전 낙동정맥을 단독종주 할 때는 오후 10시경 막차를 타고 들머리에서 가까운 곳으로 내려와 찜질방 같은 곳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3시부터 산행했었다. 이번 산행은 그때를 추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행했다. 그래도 숙소에서 잠을 자니 예전보다 훨씬 편안했다.

오전 7시 10분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앞에 보이는 큰 산세와 흰 비늘구름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다. 7시 20분 버스에 올라 산행 들머리인 배내고개로 향했다. 가는 도중엔 언양 시내를 지났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도시가 훨씬 커져 있었다.

차창 너머로 누렇게 익은 벼가 보였다. 벌써 벼를 벤 곳도 있었다. 그 풍경 뒤로는 멀리 영남알프스의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능선의 형태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전에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는 오늘처럼 능선의 옆모습을 보지 못했다.

8시 20분 들머리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여기서 서쪽으로는 능동산이 있었다. 2010년 9월 18일에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나는 이곳을 지났다. 그날 새벽 4시 45분에 석남고개에서 시작해 능동산, 배내고개,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지나 오후 8시 15분에 안적고개에서 산행을 마쳤었다. 그때 이곳을 지날 때는 날이 밝지 않은 새벽이었다. 오늘은 이곳의 풍경이 제대로 보였다.

고개를 돌려 양쪽의 풍광을 번갈아 바라봤다. 커다란 산세가 펼쳐져 있었다. 배낭을 점검하고 스트레칭하며 산행을 준비했다. 아침 기온은 12℃였다. 산이라 그런지 체감상 더 춥게 느껴졌다. 들머리 입구로 나아가 오늘 지나갈 산들이 표시된 안내도를 살펴봤다.

배내고개를 출발해 배내봉까지 1.4km 걸었다. 나는 일행보다 앞서가서 그림을 그리며 그들을 기다리려고 빠르게 치고 올랐다. 10분 후 아람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계속 오름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목재계단이 놓여 있었다. 등산로 옆으로는 시절 한창인 보랏빛 꽃이 드문드문 보였다.

배내봉에 도착하자 진행 방향으로 영남알프스 주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나는 자리를 잡고 그 광경을 스케치했다. 지나는 분들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만난 듯 나를 보면서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일행이 올라와 다시 짐을 꾸려서 출발했다.

시내 쪽 평지의 누런 벼들과 등산로 옆의 들국화를 보며 간월산으로 나아갔다. 10시 42분이 되어서야 간월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의 풍경도 대단했다. 나는 다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일행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 간월재로 향했다.

내려서는 길옆과 발아래 간월재 주변에는 억새가 펼쳐져 있었다. 길을 오가며 그 풍경을 보는 사람들도 들떠보였다. 많은 연인과 부부가 억새밭 사이에서 자신들의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10월 중순이라 고개에는 황금빛 억새가 가득했다. 이걸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간월재에서는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한 곳에 멈춰 있으니 약간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 서둘러 웃옷을 꺼내 입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 중에는 아까 지나오며 그림을 그릴 때 뵌 분도 계셨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영남 알프스의 풍경을 보며 중간중간 그림을 그렸다.

아쉬움 묻고 하산하다

12시 28분 신불산을 향해 먼저 출발했다. 한 번 와본 길이라 부담이 없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올랐다. 산 위쪽까지 계단길이 쭉 이어졌다.

오름길을 마치고 신불산 나무데크로 다가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크고 완만한, 부드러운 능선이 펼쳐졌다. 신불산과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영축산이었다. 데크 한쪽에 화구를 펼치고 신불산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스케치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는 산에 갈 때마다 그림을 그려왔다. 그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는 작은 스케치북에 그렸는데 지금은 큰 크기로 그리려고 화판과 화구를 휴대하고 오른다.

지방산에 갈 때는 일행과 함께 그날 일정을 마치고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그림 그릴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행보다 앞서가야만 한다. 먼저 가서 그림을 그리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일행을 뒤쫓는 것이다. 남들보다 체력을 더 써서 그림 그릴 시간을 확보하는 셈이니 힘이 배로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신불산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신불재 쪽으로 향했다. 원래 이번 산행은 신불재에서 하산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었다.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전부 다 걷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럴 순 없었다.

그래도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일행들에게 저 앞에 보이는 능선까지만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잠깐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신불재와 신불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억새 수술 위로 파란하늘 속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갔다 와도 일행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영축산 방향 갈대 숲길로 조금 더 걸어갔다. 영축산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영축산 정상까지 다녀오고 싶었지만 나는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결국 중간지점까지 가다 발걸음을 돌렸다. 일행들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

신불재로 돌아와 가천저수지로 내려섰다. 내리막길 입구에서는 저 멀리 언양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그렇게 한참 숲길을 내려가 일행들을 만났다. 왼쪽으로는 신불산 공룡능선이 솟아 있었다. 기암봉우리 속에서 빼어난 암릉미가 느껴졌다. 잠시 멈춰 스케치했다.

오후 3시 47분 건암사로 내려섰다. 경내를 보려고 마당으로 가니 여자 두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잠깐 절 구경을 하려고 왔다고 대답하니 그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들이 내어준 삶은 고구마와 귤을 베어 먹었다. 감사인사를 전하며 답례로 내가 오늘 그린 그림을 보여드렸다. 다들 대단하다며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건암사를 뒤로하고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지나,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공단 삼거리로 갔다. 오전에 산행을 시작할 때는 해발고도가 높아서 오르는 길이 길지 않았는데, 하산길은 천근만근이었다. 아마 출발지와 도착지의 고도차가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착 예정 시간은 3시 30분이었는데, 차에 올라 시계를 보니 1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그래도 좋은 산행이었다.

일행이 모두 버스에 오르고 우리는 뒤풀이 식당으로 이동해 삼겹살로 저녁 식사를 했다. 힘든 산행을 다녀온 후라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렇게 식사까지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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