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동시장 강타한 '노동판결 大賞'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연말이면 어김없이 각종 방송 매체에서는 가요대상,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 각종 시상 프로그램이 줄을 잇는다. 공동수상의 남발로 상의 가치가 떨어졌다거나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으로 진부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시상 프로그램을 보면서 올해 히트한 노래, 드라마, 연예프로그램을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올 한해 노동판결은 어땠을까. 나름의 기준으로 시상을 해본다.
◆논란점화상
서울행정법원 2023. 1. 12. 선고 2021구합71748 판결이다. 이른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로,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조건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한다는 결론이다. 이 결론에 따르면, 원하청 관계에서는 원청이 수많은 하청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해야 하고(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되고), 하청 노동조합은 교섭 결렬 시 원청을 상대로도 쟁의행위를 하여 원청이 대체근로 금지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원래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이 있는 자’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에서 설시되었고(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같은 법리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성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가 문제이다. 법원은 이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와 단체교섭은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 바 있는데(부산고등법원 2018. 11. 14. 선고 2018나53149 판결), 이번에 상반된 판결이 선고됨으로써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성에 관한 논란이 점화되었다.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사회적파장상
공동수상이다.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 관련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전원합의체 판결과 불법 쟁의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에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책임 개별화를 선언한 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이다. 두 판결 모두 기존 법리를 폐기하거나 사실상 변경하는 것으로 그 사회적 파장이 상당하였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과반노조 또는 근로자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더라도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관한 것으로, 수십 년 동안 확고한 법리로 자리를 잡아왔는데, 이번 판결로 폐기되었고, 동의권 남용의 법리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위 사건은 현재 파기환송심에서 동의권 남용의 법리를 기초로 심리가 진행되고 있고, 해당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인지 무효인지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책임 개별화에 관한 판결은, 판결 직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내용을 대법원이 반영한 것이냐는 논란이 일었던 판결이다. 어쨌든 위 판결로 노동조합이 불법쟁의를 하였을 때 노동조합 및 조합원의 책임 범위가 개별적으로 판단되게 되었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측에서는 개별 조합원의 불법쟁의 참여 여부에서 더 나아가 가담 경위 및 정도, 손해에 대한 기여 정도 등에 대한 주장·입증 책임을 지게 되었다.
◆바른해석상
역시 공동수상이다. 무기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는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과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는 소극적 의무라는 서울고등법원 2023. 12. 1. 선고 2022누46543 판결이다. 공통적으로 ‘사회적 신분’, ‘공정’이라는 다소 법률개념이라고 보기 어려운 용어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적 신분에 관한 판결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공무원은 근로조건의 차별 여부를 살펴볼 만한 비교집단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다만, 사회적 신분이 반드시 선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사회적 지위에 국한된다거나 변동가능성이 없을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향후 사안별로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노동조합법은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를 공정대표의무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고, 과연 사용자의 의무의 성격에 관하여 논란이 있는데, 위 판결은 사용자의 의무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소극적 의무라고 밝혔다. 공정대표의무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타당한 해석이다.
◆개별사안해결상
노동조합 간부가 회사가 설치한 CCTV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사건에서 일부 무죄판결을 선고한 대법원 2020. 7. 29. 선고 2017도2478 판결이다. 위 판결에 대하여 회사는 작업장에 CCTV를 설치할 수 없고, 만약 설치하더라도 검은 비닐봉지로 씌워버려도 상관없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위 판결에서 사업장 외곽이 찍히는 CCTV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행위는 유죄로 인정되었다.
무죄로 인정된 부분 역시 개인정보보호법이 규정한 동의를 받지 못한 점과 근로자참여법상 근로자 감시 설비에 관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점, 노사간 대립 속에서 회사가 조합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점 등 형사사건 특유의 여러가지 사정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사안이다. 위 판결은 개별사안에 국한된 것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개근상
마지막으로 개근상은 사내하청의 근로자파견 사건이다.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끊이지 않고, 매년 주목할 만한 판결들이 선고되고 있다. 올해 주목할 만한 판결로 완성차 제조회사의 2차 물류업무에 관하여 근로자파견을 부정하고 적법도급을 인정한 판결이 있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23다215842(병합) 판결, 서울고등법원(인천) 2023. 11. 30. 선고 2021나13187(병합) 판결로, 관련된 회사도 2곳이다.
1차 협력업체인지, 2차 협력업체인지라는 단순한 기준에 따라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는 어렵지만, 2차 협력업체의 경우 소위 원청의 지휘명령이나 원청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의 요소는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정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면 2차 협력업체의 경우 근로자파견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낮은 것은 분명하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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