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기[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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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를 구합니다// 그는 길들일 수 없고/ 작은 일에 짜증을 내며/ 당신이 상상하는 높이의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갑니다.'
어쩌면 전화 통화를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야 할 말은 메일로 주고받으며, 급한 연락은 문자 메시지 등으로 해결했었지.
지금 당신과 마주하는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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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를 구합니다// 그는 길들일 수 없고/ 작은 일에 짜증을 내며/ 당신이 상상하는 높이의 울타리를/ 가볍게 넘어갑니다.’
- 민구 ‘공고’(시집 ‘세모 네모 청설모’)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지낸 지 몇 주가 흘렀다. 요즘 우리는 전화기로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전화 통화를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벽을 바라보고 혼잣말을 하는 사람처럼 화면을 마주 대한 채. 스마트폰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대개 이렇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들.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연인들. 일제히 전화기 쪽으로 고개를 숙인 대중교통 안 사람들. 새삼스러울 것 없는, 문득문득 무섭고, 괴상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섬처럼 외떨어져 ‘마주함’을 잃고 있다.
며칠 전 서점에 찾아온 ‘낯선’ 이는 우리가 동일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 사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럴 수가.’ 속으로 탄식하고 말았다. 몇 달을 공들여 마무리한 일이었는데, 그 일을 진행하는 사이 우리가 대면하기는커녕, 전화 통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해야 할 말은 메일로 주고받으며, 급한 연락은 문자 메시지 등으로 해결했었지.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아마 SNS를 통해 익혔을 것이다. 우리를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는 애써 익숙한 척 악수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헤어진 다음 조금 슬퍼졌고.
퍽 과장된 일화이다. 아직도 우리는 마주 보고 대화한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안 스마트폰은 잠시 잠깐 들여다볼 뿐인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생활을 잠식하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 당신과 마주하는 이는 누구인가. 혹시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당신만은 아닌가.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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