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억울하다] 한쪽에선 '중독' 낙인…다른 쪽에선 'K컬처' 주역

이민후 기자 2023. 12. 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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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시선]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바로 즉답할 수 있는 분 많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겸손하거나 나쁜 사람이어서는 아닐 겁니다.
당신은 좋은 남사친 혹은 여사친이지만 좋은 연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 상사지만 좋은 아빠는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엄마이면서 좋은 직장인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임은 절대善도 아니지만, 절대惡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절대선보다는 절대악에 가까운 취급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억울(抑鬱)의 한자를 보면 '억눌러서 답답하고 우울하다' 정도로 읽힙니다.
게임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애써 억누르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게임은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한쪽으로 애써 누르지 않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잘 들여다보겠습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닙니다."

게임업계 종사자를 만나면 늘상 듣는 말입니다. 이들은 반사적으로 게임이 질병이 아닌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게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양극단을 달립니다.

한쪽에서는 게임은 폭력성을 유발하는 '중독 물질이자 질병'이라는 시각과 다른 쪽에서는 콘텐츠 수출액의 70%를 차지해 'K컬처'의 숨은 주역이라고 평가합니다.

'중독·질병' 낙인찍힌 게임의 '수난시대'
미디어를 통한 유명인, 권위자의 발언에서 바라본 게임은 2010년대 인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지난 8월 한 사건의 범죄사실을 '게임'이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사건의 피의자를 구속기소하면서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젊은 남성을 의도적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마치 컴퓨터게임을 하듯이 공격한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으로 피의자인 조선의 상태를 표현한 내용입니다.

당시 검찰은 피의자의 폭력성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분석했습니다. 앞으로 모든 폭력·상해 사건의 다양한 동기를 '게임' 하나로 일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세간에서 나왔습니다. 
 
[CG=이경문]

지난 2011년 보도됐던 뉴스에서는 PC방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한 후 갑자기 전원을 내립니다. 한창 게임 중이던 게이머들은 고성과 욕설이 내뱉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게임의 폭력성을 지적하려는 실제 상황 연출을 두고 이견은 엇갈렸습니다. 

지난 2013년 19대 국회에서는 정신과 의사 출신의 신의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중독 예방 관리·치료를 위한 법률', 이른바 4대 중독법(마약·술·도박·게임)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신 의원은 해당 법안이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중독의 예방·완화를 위해 국가가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본법을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안에 힘을 실었던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4대 중독법에서 게임을 빼자'는 요청에 "마약보다 강한 중독이 게임에 있을 수 있다"며 "차라리 마약을 빼겠다"고 밝혔습니다. 게임의 중독성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시사했습니다.

당시 여야 정치인들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발로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진 못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지난 2019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는 만장일치로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식 질병코드를 부여했습니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건 '질병'이라고 낙인을 찍은 겁니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각국의 보건당국은 해당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예산을 배정하는 등 보건의료 차원의 실질적 조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한국표준질병분류(KCD)가 개정되는 오는 2025년까지 게임 질병 코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두고 질병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와 게임산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기싸움이 계속된다는 뒷얘기가 세종에서 종종 나오곤 합니다.

2025년까지 게임에 대한 '질병 낙인'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지만 정부는 문체부의 '판정승'에 손을 들어준 모양새입니다.

 尹, 게임의 '산업적 가치' 조명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을 우승한 한국팀에 축사를 보내 선수를 일일이 호명하고 "게임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만명을 모은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 2023에서도 윤 대통령은 깜짝 축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서 "게이머들의 권익 보호 역시 민생의 일환"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가 젊은 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일시적인 힘싣기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게임의 가치를 고려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의 '밀어주기'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부산발전연구원이 공개한 '지스타 경제 효과 분석'에 따르면 지스타 개최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는 1천259억원, 고용 유발 효과는 연간 1천957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산업의 전후방 효과를 고려했을 때 지스타의 경제 효과는 3천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오곤 합니다. 
 
[CG=이경문]

문화 콘텐츠로 확대한다면 게임의 경제적 가치는 '조' 단위를 넘어섭니다.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의 대략 70%를 게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콘텐츠 수출액(17조2천억원) 중 게임이 차지한 비중은 67.4%로 11조6천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했습니다. 한류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 산업의 약 10배에 달하고 영화와 비교했을 때는 134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도 무시하기 힘듭니다. 미국 ESPN은 영화감독 봉준호, 축구선수 손흥민, 뮤지션 방탄소년단(BTS)과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상혁을 한국을 대표하는 4대 엘리트로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어제(19일) 열린 롤드컵 직관 경기장에서 표를 구입한 15%는 외국인이었습니다. 사실상 K컬처를 이끈 숨은 공신인 셈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민의 7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1년전보다 3.1%p 증가한 수치입니다. 신규 게임 이용자가 지속해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이제 게임이 국민에게 가장 대중적인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회색지대에 놓인 게임, 분명한 선을 그리기엔 모호합니다. 다만, 게임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문화적 자산에 대한 조명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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