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집념의 10년→경지 오른 해전액션…이순신의 고결한 피날레[봤어영]
장군, 아버지 이순신…인간적 내면 그린 김윤석 열연
매력적 빌런 백윤식…다른 캐릭터 활용도 아쉽
여운 방해하는 쿠키영상…초반부 루즈함이 숙제
지난 12일 시사회로 베일을 벗은 영화 ‘노량’은 김한민 감독이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천만 영화 ‘명량’부터 지난해 팬데믹 시기 여름에 개봉해 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동원한 ‘한산: 용의 출현’을 거쳐 완성한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히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명량’ 최민식, ‘한산’ 박해일에 이어 김윤석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해 생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성웅의 고뇌와 거룩한 죽음을 표현했다.
‘노량’은 ‘명량’과 ‘한산’의 흥행 및 경험치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이 시사회 때 밝힌 말처럼, 영화를 보다 보면 지금의 ‘노량’을 위해 앞선 두 전작이 존재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노량해전은 조선군과 왜군, 명나라군까지 합세해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규모 및 손실이 컸던 해상전투로 기록돼있다. 두 전작의 스케일과 기술력 모두를 능가하며 경지에 오른 해상액션신을 감상하는 게 첫 째, ‘명량’ 최민식, ‘한산’ 박해일의 눈빛과 정신을 고루 이어받아 이순신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해낸 김윤석의 섬세한 열연을 감상하는 것으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노량’에선 인물 간 관계성이나 역학관계가 두 전작 때보다 훨씬 치밀하고 복잡하다. 조선과 왜군의 대립이 위주였던 두 전작과 달리, ‘노량’에선 조선과 연합군을 결성한 명나라까지 삼국이 전쟁에 얽혀있다. 삼국의 장수들이 7년 전쟁을 바라보는 각자 다른 시선과 속내,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왜군의 두뇌싸움을 지켜보는 게 또 다른 관전 요소다.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자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성웅 이순신이 겪는 내적 갈등과 고충을 조명한 점이 유독 눈에 띈다. 김윤석은 왜군에게 목숨을 잃은 셋째 아들 면(여진구 분)을 꿈에서 만날 정도로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아비의 모습, 지치고 상처입은 병사들을 보며 느끼는 미안함, 그럼에도 끝까지 싸우다 희생당한 아들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적군을 완전히 섬멸할 의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순신의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모습들을 깊이감있게 표현한다.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까지 모든 순간을 이순신의 마음으로 임한 김윤석의 열연이 국민 모두가 아는 역사적 실화에 뻔한 결말이라도 이입하며 볼 수밖에 없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나마 시마즈의 존재감이 분위기를 살린다. ‘노량’은 최후의 대결 상대 ‘시마즈’를 이순신 못지않은 매력적인 악당으로 표현한다. 뛰어난 현장감각으로 고니시의 수와 이순신의 속내를 모두 읽어내는 예리함, 지친 왜병들의 사기를 한순간에 끌어올리는 냉혹한 리더십, 이순신 못지않은 치열함과 집요함을 지닌 백발의 장수. 백윤식은 자연스러운 일본어 연기로 시마즈를 완벽히 소화하며 카리스마있게 극을 장악한다.
동이 트며 벌어지는 마지막 백병전이 이 영화의 연출적 백미다. 긴 호흡의 롱테이크로 조선 병사, 명나라 병사, 일본 병사, 시마즈와 진린을 거쳐 마지막 이순신 장군의 시점으로 앵글을 옮겨가는 이 전투신은 그 순간 이순신 장군이 느끼는 감정과 전투의 참상에 온전히 이입하게 만든다. 자신이 죽어도 병사들의 사기는 잃으면 안된다던 이순신 장군의 뜻을 멈추지 않는 북소리로 표현한 방식도 심금을 울린다.
여기서 끝내면 좋았을텐데. 반가운 카메오를 내세워 크레딧 뒤에 배치한 회심의 쿠키영상이 안타깝게도 북소리의 먹먹한 여운을 앗아간다. 김한민 감독의 진정성은 느껴지나 마지막까지 과한 느낌을 준다. 이순신과 시마즈, 진린(정재영 분)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의 활용도도 아쉽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아 밸런스를 조절하지 못했다. 어떤 역할들은 주요 조연인데도 카메오로 출연한 이순신의 셋째아들보다 분량이 적다.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특히 일본어보다 생소한 고전 중국어 연기를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낸 정재영과 허준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피날레에 어울리는 장대한 결말이지만 욕심을 줄이고 덜어냈다면 더 완벽한 엔딩이 됐을 듯하다.
김한민 감독.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53분. 12월 20일 개봉.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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