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 손가락' 사태, 공포감 키운 언론의 무책임

노지민 기자 2023. 12. 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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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집게 손가락' 발견 만으로 "남성 혐오" "사상 논란" 딱지 붙여 보도
"너무 쉽게 '젠더 갈등'으로 호환" "기업, 언론, 정치인도 문제 확산 책임"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년 전 'GS25 사태'를 불렀던 '집게 손가락 찾기' 악몽이 게임업계를 휩쓸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여성형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엔버)가 남성 비하성 손모양을 취했다는 일부 게임 이용자들 의심에 애꿎은 여성 애니메이터가 온라인 괴롭힘을 겪었다. 영상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는 물론 원청인 넥슨 직원들도 '집게 손'을 찾아 없애는 데 밤낮 없이 동원됐다. '집게 손'이 발견될 때마다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고 피해가 속출하는 사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나.

이번 논란은 게임 캐릭터 엔젤릭버스터가 뮤직비디오 영상에서 춤 추는 장면을 프레임 단위로 천천히 보면 집게 손 모양을 한 장면이 있다는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 주장이 발단이다. 이 집게 손이 한국 남성 성기가 작다고 조롱하는 '메갈리아'(2017년 폐쇄) 로고와 같은 뜻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뿌리 소속 애니메이터 A씨가 과거 본인 SNS에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해줄게”(2022년 3월)라는 글을 올렸던 일이 뒤섞여 '의도적 남성 혐오'라는 주장이 만들어졌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던 주장은 지난달 26일, 메이플스토리 측의 공식 사과로 수면 위에 올랐다. 메이플스토리는 “많은 용사님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당 홍보물은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최대한 빠르게 논란이 된 부분들을 상세히 조사하여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했다. 뿌리 측은 “(집게 손은)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것으로 들어간 것이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다”라며 “이유를 막론하고 지적해주신 그림들로 불쾌감을 느끼게 해드린 것에 잘못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뿌리는 이튿날 논란의 이미지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고 A씨는 퇴사했다며 잘못을 시인하는 듯한 2차 입장문을 냈다가 이를 삭제했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싱글 앨범 출시 홍보 자료. 사진=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남성비하' '남혐' 딱지 붙인 기사들이 사태 전파

그러나 이 사태는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부터 '남성비하(혐오) 사건'으로 굳어졌다. 같은날 저녁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유튜브 라이브에서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냄에 있어서 일련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문화, 그런 문화를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단정하면서 “저와 메이플스토리가 얼마나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지 그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부터 언론 보도가 본격화됐다. 26일 초기 보도들은 <'메이플'부터 '던파', '블아'도 터졌다, 성별사상 이슈로 한밤 중 업계 '몸살'(게임샷)> <'그 손가락' 넥슨, '성별 혐오' 사건으로 시끌...게임업계 비상(MHN스포츠)> <“집게손가락 무슨 뜻?” 화난 유저들...고개 숙인 넥슨·카카오게임즈(뉴스1)> <“저거 남혐 이미지 아냐?” 논란...넥슨 줄줄이 사과문(국민일보)> 등 손모양을 특정한 의도가 있는 상징으로 가정했다.

이날 관련 기사 32건(네이버) 제목의 주요 키워드는 '남혐' 14건, '남성혐오' 6건, '사상' 2건, '페미' 2건 순이다. 반면 “반페미니즘 남성 집단의 '메갈 색출' 놀이 문화”,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등의 지적은 여성신문, 경향신문에 그쳤다. 주요 통신사, 경제지, 종합일간지 등 평소 게임을 다루지 않던 매체들이 이번 사태를 전했지만 그 효과는 관점이나 분석의 다양화가 아닌 논란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졌다.

▲2023년 11월26일 넥슨 메이플스토리 집게손가락 사태 관련 초기 보도들

그러다 지난달 30일 경향신문이 영상 최초 콘티는 40대 남성 애니메이터가, 콘티 검수와 총괄은 50대 남성 감독이 했으며, 사태 원흉으로 지목돼 신상털이 등을 겪은 여성 애니메이터 A씨는 문제 장면과 관련이 없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4일 “콘티와 원화 확인 결과 이 캐릭터는 집게 모양으로 손가락을 굽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넥슨도 콘티를 포함해 8차례 이상 검사·확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파악됐다”고 후속 보도했다.

게임전문매체 디스이즈게임의 경우 6일 <<a href="https://www.thisisgame.com/webzine/nboard/5/?n=181705">[인터뷰] '집게손' 논란의 중심 스튜디오 뿌리, “은근슬쩍 스리슬쩍” 혐오 넣었나?> 기사를 통해 뿌리 장선영 대표와 김상진 총감독을 인터뷰하며 논란의 이미지 실제 장면과 원화, 작업 시트 등을 확인한 내용을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11일까지 기사에 나온 장면 외의 컷을 제보 받아 관련 답변을 구하겠다며 후속 보도를 예고한 상태다.

이후로도 엔버의 '집게 손가락'에 대해선 남성비하 의도로 삽입된 정황이나 이를 남성 비하 의미로 해석할 맥락 등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게임사 뒤흔든 '그 손가락'...'메갈'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머니투데이)> <'일베' 손과 '메갈' 손, 혐오는 왜 게임계를 괴롭히는가(게임플)> 등 집게 손을 '메갈 손'과 동일시하는 보도가 잇따랐다. 특히 머니투데이는 이번 일을 “사람들의 충격을 자아낸 요소 중 하나는 외주사가 의뢰 받은 작업을 하면서 '장난질'을 쳤다는 것”이라 규정하거나, 일부 외주업체의 소셜미디어 및 근로계약서상 사상 검열 분위기를 “관리” 차원으로 전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데이터 분석 플랫폼 '빅카인즈'에서 2023년 11월 26일~12월 11일 '넥슨, 손가락'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들의 연관어 분석 결과.

넥슨 내부에선 의도와 관련 없이 특정 이미지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배수찬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넥슨지회장은 통화에서 “의도와 상관 없이 콘텐츠 검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콘텐츠 업계에서는 논란 자체가 일어나는 걸 피하고 싶어 한다. 저희 뿐만 아니라 방송사 등에서도 다 피하는 논란의 표현들이 있다. '혐오'라는 걸 인정하는 걸 떠나서 '일'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시일이 지나면서 최초 사건에 대한 기사는 잦아들었지만, 그 자리는 새롭게 발굴된 논란들로 채워졌다. 포스코, 빙그레, 과천시, 보건복지부 등 홍보물에 집게 손가락이 발견됐다는 논란이 전해지고 이를 마주한 기관들은 관련 이미지를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 포스터는 2021년 영국에서 제작된 이미지를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논란에 가세하면서 갈등을 부추겼다.

오염된 일상적 표현,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각에선 일상적 손 모양에 특정 의미가 덧씌워졌다는 점에서 '집게 손'과 'OK사인'을 함께 거론한다. 2017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을 시작으로 'OK' 손 모양을 백인우월주의(White Power)를 뜻하는 'WP' 상징처럼 사용한 사례다. 이후 유대인 인권단체이자 반인종주의 단체인 ADL(Anti-Defamation League)이 증오 상징(Hate Symbol) 리스트에 'OK사인'을 추가하고, 2020년 미국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 이 손 모양이 삭제된 바 있다.

그러나 ADL은 'OK사인'이 그 자체로 증오나 혐오 상징이 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OK사인은 보편적 손짓이고 대부분의 사용은 완전히 무해하다는 것을 인식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백인우월주의자, 대안우파 주의자,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두 이 상징을 사용한다는 사실로 그런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 백인우월주의와 연관성을 의도하거나 나타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없다”며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다른 명확한 지표와 관련해 제스처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ADL 홈페이지에 게재된 'OK사인' 의미 설명. ADL은 OK사인이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손 모양이라는 점에서

언론이 잘못된 주장의 확산보다 피해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사무국장은 통화에서 “(2021년 GS25 사태와 유사한) 논란이 지금도 벌어진 건 당시 문제나 비판 지점이 정리되지 않고 흘러가듯 마무리됐기 때문 아닌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는 “(사안을) 너무 쉽게 '젠더 갈등'으로 호환시키는 것 같다”며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이 민원 대응 시스템이나 매뉴얼 등을 갖췄는지, 악성 민원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이런 일이 반복될 때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폭력이 이어지기도 한다”고 우려하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스튜디오 뿌리 사무실을 찾아가거나, 직원들 얼굴을 촬영·유포하는 행위가 발생했다. 넥슨을 비롯한 기업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고민할 책무가 있고, 지금이라도 단호하게 '이것은 소비자의 정당한 의견이라는 외피를 둘러싼 페미니즘 백래시'라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2023년 12월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된 '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논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긴급토론회 현장. 사진=장혜영 의원 페이스북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는 “'바람의나라: 연'이라는 게임 개발사 슈퍼캣에서 지난달 회사 내 아트 직군에 한정해 반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본 협회에 제보돼 기사화 됐다”며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당장 들려오는 목소리에만 집중하면 거대 기업조차 과대표된 악성 이용자에게 휘둘린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고 했다. 나아가 “악성 이용자들이 '빈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전문적 여론조사 기관과 연구소 등에 의뢰해 정확한 규모를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논란의 장면을 그렸다고 잘못 알려졌던 A씨는 토론회에서 “페미니스트는 개인이고 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성평등을 지지하겠다는 뜻으로 해당 트윗을 작성했다”며 “저들 주장대로 '은근슬쩍' 혐오 표현을 넣었다면 내가 작업한 그림에만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작업하지 않은 그림, 입사하기도 전의 그림에서 혐오 표현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것은 어불성설”(장혜영 의원 대독)이라고 밝혔다.

이민주 페미니스트웹진 Fwd 연구자는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이 있는 공적 주체가 '관심 끌기식' 논란을 무시하고 효능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며 “넥슨을 비롯한 다수 기업, 언론, 일부 정치인까지 이 논란을 수용하고 승인했다는 점에서 문제 확산에 굉장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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