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혼이 내 몸에 들어온 듯 전시장 꾸미죠”
‘덕수궁관’ 장욱진 회고전
좁은 곳 들어가게 디자인
“창고서 발견한 감동 경험”
2016년 이중섭 기념전 땐
좁은 틈새로 사진 보게 해
“작가 의도대로 공간 창작
감상 넘어 스토리도 선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1917∼1990) 화백의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불편한 맛’이 있는 전시다. 전시 대표작이자 60년 만에 일본에서 발견돼 귀향한 1955년 작 ‘가족’을 보려면 줄을 서 기다렸다가 고개를 숙이고 협소한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 그림이 잠들어 있던 일본 오사카(大阪) 근교의 아틀리에 창고 속 벽장의 모습을 재해석한 공간인데, 효과는 꽤 확실하다. 불편을 감수하고 들어간 관람객은 손바닥만 한 작은 화폭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이 공간을 만든 건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이다.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은 김 기획관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작품을 발견해 돌아온 배원정 학예연구사의 말을 듣고 이 공간을 떠올렸다. 반세기 넘게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벽장 구석에서 찾았을 때 배 학예연구사가 느꼈던 벅찬 감정을 관람객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서울관에서 만난 김 기획관은 “수십 년 만에 돌아온 작품을 1∼2초 만에 스쳐 가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이 공간에서 작품을 보는 순간, 모두가 장욱진 그림의 발견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 걸리더라도 전시마다 얻어가는 감상은 다르다. 공간이 주는 힘이 달라서다. 관람 동선부터 작품의 배치, 벽의 색깔과 질감, 조명의 위치와 세기, 심지어 조향까지 어떤 전시공간이 마련됐는지에 따라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미술관과 화랑들이 흰 벽에 그림을 나열하는 ‘화이트 큐브’ 문법을 깨고 전시에 어울리는 공간을 구성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김용주 기획관은 작가와 큐레이터 사이에서 미술관 풍경을 바꿔 놓은 주역이란 평가를 받는다.
김 기획관은 국현 공채 1호 전시공간 디자이너다. 미국 피보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등에서 일하다 2010년 국현에 발을 들였다. 2013년과 2018년 각각 문을 연 서울관과 청주관 디자인을 담당했고, 지금까지 138건의 전시공간을 디자인했다. 2021년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같은 굵직한 전시들이 김 기획관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는 “미술관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지만 대단한 지식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어려운 이미지가 있다”면서 “누구나 주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소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창작해 나가는 게 나의 일”이라고 했다.
“태도가 디자인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작품을 낳은 예술가의 삶과 철학,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이 경험을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작가의 영매(靈媒)가 된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전시가 바로 2016년 열린 이중섭(1916∼1956) 탄생 100년을 기념해 열린 ‘백년의 신화’ 전시다. 이 전시는 이중섭의 자그마한 은지화를 커다랗게 키워 벽화처럼 만들고, 좁은 틈새로 들어가면 커다란 이중섭의 사진과 마주 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 영역을 마련하는 파격을 보였다. 이를 두고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여러 미술관장을 만나 감상을 교감했는데, 대화 끝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전시 디스플레이가 언제 이렇게 발전했느냐는 찬사였다”고 평했다. 김 기획관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얼 보여주고 싶을지를 고민한다. 김용주라는 몸에 이중섭의 혼이 들어오는 것”이라며 “밥만 준다면 평생 벽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 이중섭의 바람대로 은지화를 벽면에 가득 채웠다”고 했다. 이 전시는 이듬해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독일 iF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김 기획관은 최근 이런 전시 공간 디자인 경험을 담은 ‘전시 디자인, 미술의 발견’(소동)을 펴내기도 했다. 다소 생소한 전시 공간 디자인에 대해 소개하고, 미술 대중화 바람 속에서 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 기획관은 “한 번의 전시로 예술의 정답을 낼 수도 없고, 어딘가에 머물러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며 “미술관이 작가의 어떤 예술적 태도를 느끼기를 바라는가 하는 관점을 획득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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