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코코 억울해서 못보내요”…의료사고 중재기구 만든다

진영화 기자(cinema@mk.co.kr) 2023. 12. 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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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픽사베이]
석현희 씨(35)는 9살 반려견 ‘공주’를 떠나보낸 뒤 한달째 A동물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석 씨는 담당 수의사가 혈액검사 등 정밀검사를 하지 않은 채 혈변 사진을 근거로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아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주 죽음과 관련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병원 역시 석 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영업방해 등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건 상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동물병원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반려견 보호자와 동물병원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반려동물 의료사고 관련 분쟁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동물병원이 보호자 측에 진료 기록을 제공할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동물의 민법상 지위가 ‘물건’에 머무르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 상담건수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00건이 넘는다. 병든 반려견 보호자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40대 B씨는 “애기(반려견)가 혈변을 처음 본 날 병원을 방문했을 때 적극적으로 검사하고 조치하지 않아 제 곁을 떠났다”며 “애기가 죽고난 이후에야 병원은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등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상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동물병원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민법 98조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물건’에 해당된다. 사람의 의료사고처럼 업무상 과실치상이나 과실치사죄가 성립하지 않아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유일한 법적 해결 방식이다. 하지만 의료사고 입증이 어렵고 배상액도 적어 소송의 실익이 거의 없다.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 때문에 영업 피해를 입는 동물병원도 적지 않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의료법은 치료나 수술 도중 환자가 죽거나 다치면 원인과 의사의 과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진료기록을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동물병원은 의료사고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자료인 반려동물의 진료 기록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소송을 하지 않는 한 수의사들은 보호자에게 진료 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달 전 반려견을 떠나보낸 나 모씨는 “원인을 알고 싶어 진료기록을 요청했지만 그럴 의무가 없다며 거절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면서 정부는 부랴부랴 반려동물 의료사고 중재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구체화된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동물 의료와 관련해 의료사고를 확인하고 심의할 수 있는 조직이 없는 상황”이라며 “대한수의사회 각 지부에 중재기구를 설치하고 운영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내년부터 반려동물 의료사고 중재기구 설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실에 맞게 법 개정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2년 넘게 표류 중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난 6월 동물 보호자가 진료기록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수의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위 심사도 거치지 못했다.

대한수의사회는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이 우려된다며 진료기록 공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용 의약품은 수의사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데 세부 처방 내역이 담긴 진료기록이 공개되면 누구나 약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다”며 “동물 의료의 공적인 성격이 먼저 인정되고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동물병원도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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