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CEO 경영승계 깐깐해졌지만…'외풍'은 어쩌나

이경남 2023. 12. 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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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외부인사 '중용' 해석…행원 출신 '은행장' 신화속?
외부후보, 이사회 공식 접촉 허용…'외풍' 더 강해질듯
'부회장'직 폐지 가닥…사외이사 다양화부터 나설 듯

금융당국이 은행계열 금융지주회사와 은행들의 지배구조에 메스를 들이대자 금융권에선 우려하는 시각들이 쏟아진다. 금융당국이 이번에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외풍'에 약한 지배구조를 만들게 될 것이란 걱정에서다.

금융당국은 이번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투명성과 공정성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외부인사를 중용하라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치권 등 외부의 입김이 거세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12일 은행계열 금융지주회사와 은행의 CEO 경영승계 절차, 이사회 구성 등의 개선방안이 담긴 '은행·은행지주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 금감원 "은행지주CEO 승계 3개월전 개시…외부후보 동등기회"

 

행원 출신 '은행장'…막연해지나

'목표는 은행장'

지난 2013년 은행원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TBS방송국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의 목표다. 말단 사원으로 입행해 회사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겠다는 목표가 담겨있다. 극 중 한자와 나오키의 동료들도 은행장에 오를만한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한다. 

이번에 발표된 '은행·은행지주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보고 은행 관계자들은 한자와 나오키의 목표가 국내 은행권에서는 막연한 '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만들면서 외부출신 CEO 후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회사 차원에서 부여하도록 했다. 내부출신 CEO 후보와 외부출신 후보 간 정보격차를 줄여 경쟁력 있는 CEO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국은 일부 금융지주가 유지하고 있는 부회장 직의 경우 사실상 차기 CEO를 내정해 다양한 후보군에 대한 검증을 약화하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등의 부작용을 재차 강조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같은 방침이 외부인사 중용을 사실상 종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내부 직원 사기 저하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CEO가 될 수 있다는 게 '주인없는' 금융회사의 장점 중 하나인데, 이같은 길을 막는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은행 한 관계자는 "회사의 사정을 잘 알고 로얄티(충성심)가 높은 인사가 차기 CEO 후보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아니냐"라며 "금융당국이 이같은 정책을 펼치면 궁극적으론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외풍' 더 거세질수도

금융당국은 이번에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CEO 선임 절차를 최소 3개월, 최대 6개월 이전에 개시하도록 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내부인사와 외부인사와의 평가에 대한 공정성 확보를 위해 외부인사가 CEO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면 이사회와 공식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도 담았다.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외부인사가 이사회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공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외풍'에 약한 지배구조를 만들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회의 참관 등으로 이사회 접촉 방식을 제한하더라도 이사회의 논의 과정부터 외부인사가 참여한다는 것이 외부의 입김이 닿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 최고 의사결정 과정과 해당 인사들에게 외부인의 접촉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느냐"라며 "의사결정 과정에 참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일부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정치권 등 외부의 눈치를 더욱 살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특히 이번 정부 들어 관치금융 논란이 이어지지 않았느냐"며 "금융당국은 물론 정치권이 회사의 CEO 선임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을 때 이같은 방안이 효과가 있는 것이지 현재와 같이 관치금융 논란이 심할때는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제성 없다지만 '부회장'직은 없앨듯

이번에 마련된 모범관행은 강제성을 띄지는 않는다. 모범관행을 중심으로 금융사들 마다 상황에 맞게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게 금감원의 방침이다. 

금융사들은 이번에 마련된 모범관행에 맞춰 부회장직 삭제, 사외이사 진의 다양화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CEO 선임은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이같은 작업을 일단락한 만큼 중장기적인 과제로 개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부회장 직과 같은 직책에 대해 금융당국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만큼 이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조직개편안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각 사업분야를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는 두되 승계 가능성을 염두할 수 있는 직책은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외이사의 경우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이전까지 후보군을 꾸리고 이를 확정해야 하는 만큼 사외이사 진의 인원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당장 회장을 새로 뽑아야 하는 DGB금융지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은행계열 지주회사와 은행의 CEO 선임이 마무리 된 상황"이라며 "CEO 선임과정을 고쳐나가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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