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의 역설[오늘을 생각한다]
지난 11월 최강욱 전 의원은 한 출판기념회에서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빗대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는 경우는 잘 없다”고 말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야기에서 갑자기 ‘김건희=암컷’으로 점프한 의식의 흐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강욱은 하루 전날 다른 행사에서도 “침팬지 사회에서는 암컷이 1등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비리 의혹은 낱낱이 밝혀야 할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최강욱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보면 김건희씨의 실제 의혹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동물사회에서 암컷이 1등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검찰이 밝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최강욱은 왜 자꾸 그런 말을 할까? 그의 발언은 청중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양일의 행사에서 주최자와 청중은 최강욱의 ‘암컷’ 발언을 훈훈하게 반겼다고 전해진다. 이런 분위기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이는 행사와 그들이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가장 자극적인 말로 김건희씨를 비난하는 사람이 그날의 분위기메이커가 된다. 대통령 배우자의 이름은 분위기를 돋우는 최고의 ‘양념’이다. 김건희씨가 민주당의 최고 스타가 된 것은 한 유튜브 채널이 제기한 이른바 ‘쥴리설’ 때문이다.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이 의혹을 대선 필승카드로 여겼다.
집권에 실패하면서 당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대상에 대한 악감정만 남았다. 이러한 원한 감정은 당의 대선 출구전략과 맞물려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이 세계관 속에서 윤석열의 당선은 ‘쥴리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책임이 된다. 그걸 알고도 2번을 찍은 ‘윤찍’들은 지구를 함께 공유할 수 없는 원수이며 김건희는 나라에서 제일 못 된 ‘암컷’이 된다. ‘쥴리병’에 걸리면 우리 빼고 온 세상이 적이다. 그렇게 김건희라는 이름은 민주당 진영주의의 상징이자 진영주의자들의 생존전략이 됐다.
그들 사이에서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조롱은 “안녕하세요” 같은 안부 인사다. 최강욱을 징계한 당에 화가 난다, 인사 좀 나눴을 뿐인데 징계를 하다니, 당의 법도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런 분위기는 저 당의 앞날에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여기서 얻는 정치적 이득이 존재하는 이상 개별 정치인들의 선동을 막을 방법이 없다. 김건희를 매개로 형성된 팬덤과의 애착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의 정치가 끝난다는 걸 그들은 안다. 미래가 불안한 정치인은 더욱 자극적인 발언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김건희가 없으면 나도 없다. 김건희를 혐오하며 김건희와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최강욱의 불안이며 민주당의 불안이다.
‘암컷’ 발언의 본질은 민주당의 진영주의적 토양과 이를 부추겨 연명하는 정치인, 그에 휘둘리는 당의 체질이다. 집권 초반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들은 분명 윤석열 정권의 큰 부담이었다. 황당한 건 ‘김건희 리스크’가 이제 민주당에 더 큰 고민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저 당의 정치란 대체 무엇인가.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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