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네덜란드 국왕과 ASML 방문…삼성전자·ASML, 1조원 규모 R&D센터 설립 양해각서 체결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 본사를 방문했다. 네덜란드 국빈 방문 계기로 삼성전자와 ASML은 1조원 규모 R&D센터를 한국에 설립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양국은 반도체 산업 관련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는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도 동행했다. 왕복에만 4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네덜란드 국왕이 직접 동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ASML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장비 한 대당 가격은 3000억~4000억원에 달하지만 1년 생산량은 30~40대에 불과하다. 전세계 반도체 기업이 구입을 원하지만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슈퍼을’이라고도 불린다. 어느 기업이 이 장비를 더 확보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순방은 한마디로 반도체 순방”이라며 “반도체 제조 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도체 소재, 장비 주도국인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과의 전략적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ASML 방문 계기로 총 3건의 MOU가 체결됐다. 먼저 삼성전자와 ASML은 내년부터 공동으로 1조원을 투자해 국내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R&D센터를 설립·운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공정을 파운드리 생산 라인에 적용하는 양산에 성공했다. TSMC와 인텔도 3나노미터 양산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이번 R&D센터 설립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박 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ASML과 삼성전자가 공동 설립하는 R&D센터는 차세대 EUV를 기반으로 초미세 제조 공정을 공동 개발하게 된다”며 “ASML이 반도체 제조기업과 해외에 최초로 설립하는 R&D 센터로서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며, 우리 정부는 설치부터 운영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 공동개발 MOU를 체결했다. EUV 장비 내부의 광원 흡수 방지용 수소가스를 소각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것이다. 박 수석은 “재활용 기술을 통해 EUV 한 대당 전력 사용량을 20% 감축하고 연간 16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부는 또한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MOU를 체결해 미래 반도체 인재를 함께 양성하기로 했다. 내년 2월부터 네덜란드에서 1주일씩 진행되는 아카데미에서는 양국에서 선발된 석·박사급 대학원생 및 엔지니어 각 50명씩 총 100명이 참가해 아인트호벤 공대에서 반도체 석학들의 특강을 듣게 된다. ASML, NXP 등 기업 현장에서의 실무 교육도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차세대 EUV 장비를 생산하는 클린룸(청정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핵심 생산 공간)도 시찰했다. 윤 대통령이 시찰한 클린룸은 2나노미터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차세대 EUV 장비가 제조되는 곳으로, ASML이 외국 정상에게 클린룸을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수석은 “윤 대통령 방문에 맞춰 처음으로 대외 공개하는 것”이라며 “ASML과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와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윤 대통령의 ASML 본사 방문이 ASML로부터 삼성전자의 EUV 장비 추가 공급 조달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현지 브리핑에서 “삼성전자 같은 경우에는 3나노 기술을 양산에 적용했으니 그런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EUV 장비가 필요하다”며 “이번 반도체 동맹을 통해 이전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우리가 장비를 조달하는 데 있어서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빌렘 국왕과 함께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을 한 뒤 양국 정상 주재로 주요 반도체 기업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도 진행했다. 한국 측에서는 이 회장, 최 회장이 참석했다. 네덜란드 측에서는 ASML의 피터 베닝크 CEO, 증착 장비를 생산하는 ASM의 벤자민 로 CEO, 자이스의 안드레아스 페허 CEO, 연구기관 IMEC의 루크 반 덴 호브 CEO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이번 (반도체) 협력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양국 정부간 직접 소통 채널을 강화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암스테르담 |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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