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바리케이드 대치는 'FAKE'… 육사 vs 갑종 대립구도 'FACT'
극중 ‘전두광’이 언급한 육사생도 행진
5·16 이후 일어났던 실제 사건 가리켜
전두환, 박정희 총애 받으며 요직 차지
정 총장 체포는 사후결재 기록 남겨
훗날 12·12 쿠데타 처벌 결정적 증거로
‘이태신’ 홀로 행주대교 막는 장면 허구
실제론 출동 못하고 수경사서 체포돼
12·12 군사반란을 극화한 영화 ‘서울의 봄’이 12일 자정까지 누적 관객 수 716만명을 기록하며 ‘천만 영화’를 향해 순항 중이다. 관람 중 격정과 긴장감으로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심박수 챌린지’와 같은 유행이 번지거나 각종 커뮤니티에 감상이 올라오고, 극 중 전두광(전두환)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다른 작품이 덩달아 호응을 얻는 등 영화의 반향은 크다.
등장인물들이 가명을 쓰긴 했지만 분명 ‘서울의 봄’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 속의 모든 부분이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감독의 상상력으로 구성됐고,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과장이라는 조미료가 첨가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전두광과 노태건(노태우)은 자신을 따르는 선·후배 군인(신군부)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다. 여기서 등장한 핵심 사조직이 ‘하나회’다.
하나회는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영화에서도 전두광이 홀로 하나회 후배를 만나 가입을 확정짓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회의 비밀성을 보여주는 장치다. 전두광이 반란을 망설이는 노태건을 설득하며 육사 생도 행진을 언급하고, 그 후부터 자신은 박정희 대통령에 충성했다고 강조하는 장면도 눈에 띈다. 이는 실제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전두환이 벌인 육사 생도 행진사건을 가리킨다. 전두환은 5·16 군사정변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지지 행진을 벌인다.
이 일로 전두환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게 된다. 전두환은 육사 11기 동기 중 가장 먼저 대령과 ‘별’(준장)을 달았으며, 이른바 ‘알짜 보직’을 두루 거쳤다. 10·26사건이 일어나기 7개월 전인 1979년 3월, 박 대통령은 전두환을 군내 최요직 중 하나인 보안사령관에 임명했다. 이렇게 출세의 길을 걸은 전두환은 자신이 가진 힘과 로비를 통해 하나회 멤버들을 군내 요직에 배치했고, 보안사에서 정보를 독점하며 반란의 기회를 잡게 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전두환을 군부 내 자신의 충성 세력으로 두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하나회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으며 활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뒷받침할 만한 물적 증거는 없지만 박 대통령이 하나회를 묵시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비호했다는 정황은 1973년 윤필용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은 1973년 4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후계자로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난다. 격노한 박 대통령이 강창성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수사를 지시, 윤필용은 구속된다.
수사를 통해 강창성은 하나회의 실체는 물론 윤필용이 후원자 중 한 명이란 걸 알게 된다. 이때 다수의 하나회 장교들이 군복을 벗는다. 하지만 조직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숙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강창성은 후일 자신이 쓴 ‘일본, 한국 군벌정치’에서 “윤필용 장군 사건과 함께 착수됐던 하나회 사건 수사는 하나회의 실질적인 후원자였던 박 대통령의 무언의 압력으로 불완전한 선에서 매듭지어지게 됐다”며 “윤 장군 사건에서 전두환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회의 후원자인) 박종규 경호실장이 건재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기록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반란군과 대립하는 군인으로 나오는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 김준엽(김성균) 육군본부 현병감,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 중 이태신과 김준엽의 모태가 되는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은 흔히 갑종으로 불리는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이다.
영화에선 전두광과 노태건이 갑종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갑종은 육군 초창기 초급장교 양성을 위해 만든 제도로, 1950년부터 1969년까지 운영됐다. 약 6개월 동안 교육을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초급장교로 전선에서 싸운 장교 중 다수가 갑종 출신이다.
장태완과 김진기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임관한 각각 갑종 11기, 갑종 6기(육사 9기도 졸업)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갑종 출신 장교들이 많았고 장성도 자주 배출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은 광화문에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채 마주한다. 이태신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예하 야포단에 경복궁 30경비단 포격을 지시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상황 종결을 명령하면서 결국 전두광의 포로가 된다.
현실에서도 장태완은 가용 병력 모두를 이끌고 경복궁을 향해 출발하기 위해 연병장에 집결한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몇 대의 전차마저 적 편으로 돌아설 것이란 예상이 나왔고, 노재현 국방장관이 상황 종결을 명령하면서 출정을 포기한 채 수경사에서 전두환 세력에 체포된다. 그가 홀로 행주대교에서 공수부대를 막는 장면도 없었던 일이다.
반란에 성공한 전두환 등은 1979년 12월13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 승인 서명을 받아낸다. 영화에서 최한규(최규하) 대통령은 재가 서명 중 서류 밑에 시간을 병기한다. 이 결재가 정상호(정승화) 총장 체포 뒤 이뤄진 ‘사후결재’임을 증거로 남긴 것이다.
최 대통령의 이 서명은 1996년 대법원이 전두환·노태우에 각각 무기징역 및 징역 17년의 유죄를 판결하면서 주요 증거로 인용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전두환이 12월12일 6시20분경 국무총리 공관에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에 대한 체포 재가를 요청하였을 때 대통령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오히려 이를 거절하였음을 알 수 있다”며 “대통령이 12월13일 새벽 5시10분경 정 총장의 체포를 재가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정 총장이 체포되고 반란을 저지 또는 진압하려는 장성들이 제압된 후에 이뤄진 것으로, 이는 사후 승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이도형 기자, 엄형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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