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울산사건 이첩 지시 때 정치할 결심…총선서 폭주 막아야”[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윤, ‘조국 임명 땐 검찰총장 사퇴’ 겁박 등 정치 행위 공개적으로 이어가
검찰공화국을 국민들이 또 선택하지 않을 것…한동훈은 거의 헛꿈 꿔
이낙연 신당은 반대…성공도 어렵고 분열의 오명만 쓴 채 긴 후회할 것
공 들였던 중국 관계 무너뜨려…9·19 파기는 울고 싶은 사람 빰 때린 격
총선 출마 공식화로 정치 복귀…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보수적으로 행동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57)이 내년 총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2019년 11월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제도권 정치를 떠났던 그는 자신을 다시 불러낸 것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라고 말했다. “멈춰 세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586 정치인의 상징적인 존재다. 1989년 3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의 평양 축전 참가 등을 주도했다. 학생 시절 반미·친북주의자로 불렸지만, 지금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그는 참담함과 허탈함,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정권을 내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전 정부가 해온 많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데 대한 답답함이 커 보였다.
인터뷰는 지난 6일 그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서울 성동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추가 질문은 12일에 이뤄졌다.
- 내년 4월 총선 출마지로 원래 기반인 성동구 외에 종로도 거론되더군요.
“지역구를 제가 먼저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아요. 여러분의 말씀을 듣고 있고, 당과도 의논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 2019년 11월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민간 부문에서 통일운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어요. 그때 제도권 정치를 떠날 결심을 한 게 아니었습니까.
“당시 제가 예상치 못한 일이 출마하려던 종로에 이낙연 총리가 오시게 된 거였어요. 당은 제게 다른 지역 출마를 요청했죠. 고민 끝에 제도권 정치보다는 민간 영역에서 남북 평화와 협력에 헌신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민주당 정부가 연장된다면 제 경험과 네트워크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잃었잖아요. 제가 크게 놓친 부분이에요.”
- 그래서 다시 돌아오기로 한 건가요.
“마음을 바꾼 결정적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폭주예요.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이렇게까지 과거로 후퇴하지는 않았어요.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정말 커요. 지금 제 생각은 딱 하나예요. 내년 총선에서 이 폭주를 멈춰 세워야 해요. 그리고 정권이 교체되도록 다음 대선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 최근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왔어요.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은 각각 징역 3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어요. 고검이 임 전 실장과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재수사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데, 선거에는 영향이 없을까요(국민의힘은 2021년 임 전 실장·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항고했다).
“제 경우 송철호씨 당선을 위해 민주당 내 경쟁 상대를 매수했다는 혐의였는데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없어요.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1심 판결이 나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소위 하명수사 건도 조직적으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대목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선거개입으로 보려면 공모와 청와대로부터 먼저 내려간 지시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2심과 3심 판단까지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 2020년 1월 검찰 소환에 응하면서 이 사건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기획했다고 주장했어요.
“울산지검에서 1년8개월이 넘도록 덮어뒀던 사건이에요. 그것을 2019년 11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서울중앙지검이 넘겨받았어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와 경찰청을 압수수색하고, 수십명의 청와대 직원들을 소환했어요. 저는 윤석열 총장이 당시 정치를 하기로 이미 결심했다고 봐요. 조국 전 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을 때부터 정치적 행위를 공개적으로 했고, 추미애 장관 때 엄청난 갈등이 있었잖아요.”
-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 총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겁박했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은 건가요.
“당시 복수의 인사에게 전해들었어요. 조국이란 사람이 장관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의 임명권을 정면으로 치받은 행위예요. 그럼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칠게 대립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윤석열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참 상징적인데, 가장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이어야 할 두 수장이 현직에 있다가 사표를 내고 나와서 곧바로 정치권으로 갔어요. 거기까지 이른 정황을 종합하면 순수하게 봐줄 수 없어요.”
-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등 각종 의혹이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고발이 이뤄졌는데, 그러면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말아야 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어요. 감사원의 감사도 마찬가지고요.
“그것과 태도는 좀 다른 문제예요. 김영삼 정권 시절 이회창 감사원장은 권부의 핵심 부서를 모두 대쪽같이 감사했지만 드러내놓고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한 기억은 없어요. 윤 총장은 (조 전 장관 임명과 관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의사 표명을 했으면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거나 그 즉시 사표를 냈어야죠.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치행위를 이어갔다고 봐요.”
- 몇 단계나 뛰어넘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깜짝 발탁했으니,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윤석열 검사의 국회 발언(‘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이나 언론에 비친 모습에 과도한 기대를 했던 거겠죠. 서울중앙지검장 때는 서로 모르니까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고, 검찰총장 추천 때는 3명이 후보에 올랐는데 윤 후보가 검찰개혁을 포함한 사법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고 해요. 또 두 후보는 자기 이야기만 했는데 윤 후보는 다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고 하더군요.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것에 대해선 찬반이 팽팽했다고 들었고요.”
- 결국 5년 만에 민주당이 정권을 빼앗긴 가장 큰 두 요인은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어요. 누가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었던 겁니까.
“2019년 9월7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전날 귀국하신 대통령이 당신의 개인 휴대폰으로 제게 전화를 주셨어요. 제가 비서실장을 그만둔 후 처음 전화를 주신 거였어요.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의견을 물으셨고 저는 (철회하라는) 국민 여론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튿날 오후 3시에는 청와대로 부르셨어요. 당에서도 한두 분 오시고 김경수 (경남)지사도 부르셨는데, 김 지사는 다른 일정 때문에 의견만 전달해달라 했다고 대통령께서 미리 말씀하셨어요. 김 지사 의견과 제 의견이 일치했어요. 그런데 회의를 마친 후 윤건영 상황실장이 따라 나오면서 ‘어제 대통령께서 실장님을 비롯해 몇분과 쭉 통화를 하시고 나서 오늘 오전까지도 (임명을) 거둬들이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점심을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이낙연 총리와 하셨는데, 임명을 진행해달라는 당의 요구가 너무 강하다. 대통령이 버티기 어려우실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 그래서 조 전 장관에게 바로 전화한 거군요.
“내가 왜 강하게 임명을 반대하는지 충분히 설명해드렸어요. 스스로 접어주시는 게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길 같다고 했죠. 여기서 멈추면 국민들이 오히려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해줄 것이라고도 설득했고요.”
- 조 전 장관은 뭐라 하던가요.
“절대로 장관 욕심이 없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검찰개혁을 포함한 사법개혁 방안만 발표하면 제 발로 나오겠다고 했어요. 전혀 설득이 안 됐어요. 결국 그 다음날 임명 발표가 났죠.”
- 결과적으로 검찰개혁도 실패하고, 공수처도 유명무실해진 거 아닌가요.
“제도나 법을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워요. 만들어놓은 법의 개정은 여러 번 기회가 있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얼마나 오래된 숙제입니까? 국민 기대치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안고 그것을 해낸 거예요.”
- 현 정부 들어 검찰 수사권이 복원·확대되고 있어요(지난 10일 검찰 수사권을 확대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래서 실패 또는 빈손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죠. 하지만 정권이 또 바뀔 때를 감안하면 출발점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8부 능선을 넘어서 정상을 보고 내려왔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전의 여정이 굉장히 중요한 길잡이가 돼줄 거예요. 정권 교체를 통해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를 다뤄나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종전과 다른 국민의 이해 수준을 바탕으로 출발점도 속도도 다르리라 생각해요.”
- 정권 교체를 확신합니까.
“눈만 뜨면 압수수색하는 검찰공화국을 국민들이 또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동훈 (법무)장관이 거의 헛꿈을 꾸고 있다고 봐요.”
-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장관의 인기가 상당히 높은걸요.
“그런 걸로 따지면 안철수 의원은 진작에 나라를 세웠게요(웃음).”
- 총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차기 대권주자로도 거론되는데, 한 장관이 특별히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아직은 어떤 것도 보여준 게 없잖아요. 정치를 아직 안 했다는 것 외에 객관적으로 뭘로 설명할 수 있죠? 잘생겼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하하….”
그는 말을 이어갔다.
“다만 이런 게 있죠. 양극화와 팬덤화로 한국의 정치판이 연예시장과 비슷해졌어요. 스타 연예인도 길게 가려면 실력과 태도가 좋아야 해요. 그런데 한 장관이 국회에 나와서 하는 대꾸와 태도는 적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은 곧 국민을 보고 하는 거예요. 정치인에게는 1차적으로 말과 태도가 중요하죠. 물론 이에 대해선 민주당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요.”
-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송영길 전 대표의 총선 출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신당 이야기도 나오는데.
“…노코멘트할게요.”
-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뭐가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합니까.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제도들이 다 부정되고 있지만, 이 정부의 총체적 실패는 경제로 오고 있어요. 정부가 1.4%를 예측한 후로는 말을 안 하는데, 올해 경제성장률 1.3%를 찍을 수 있을까요? 오일쇼크 때나 외환위기 때 등 일시적으로 제로나 마이너스까지 갈 때도 있었지만 이듬해는 성장률이 크게 회복했어요. 그런데 내년에도 암울해요. 3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경제적 상황에서만 비롯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 훨씬 심각해요.”
- 어떤 의미인가요.
“중국 시장에서 한국이 밀려난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해 중국을 발끈하게 만들고 우크라이나에 가서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한방에 무너뜨렸어요. 탈중국을 앞장서 발언한 최상목 경제수석을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내세운 것도 굉장히 나쁜 신호예요. 지금 모든 나라가 실용외교를 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 혼자 이념외교를 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흑연, 희토류, 코발트 같은 핵심 자원들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요. 그 길이 막히면 이 나라 경제가 멈춰 서는 거예요. 중국과의 관계를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풀어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합니까? 대중무역 흑자가 적자로 돌아선 지 20개월이 다 돼가는데 회복 기미가 안 보여요.”
-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는 어떻게 봅니까.
“우리가 지혜롭지 못했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유엔 안보리 위반이지만, 국제사회와 함께 대응해 나갔어야지 9·19 합의를 부분 파기한 것은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이거든요. 그러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합의 전부를 파기했잖아요. 문제는 그로 인한 피해를 우리가 훨씬 더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
“북한은 문재인 정부 때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 중단 등 많은 것을 했음에도 빈손이잖아요. 남은 것은 9·19 남북군사합의 제약뿐이거든요. 9·19 군사합의 내용은 당시 우리 군에서 만들어 거의 그대로 북한에 제안하고 설득해 큰 수정 없이 관철시킨 거예요. 우리 군이 9·19 합의를 환영한 이유는 NLL(북방한계선) 일대에서 긴장을 해소할 수 있고, 이미 우리 기술과 한·미 연합전력으로 중고도·고고도로 북한을 정찰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인데, 북한은 불가능해요. 저는 윤석열 정부에 꼭 해줄 말이 있어요.”
- 뭔가요.
“북한이 평화공존 대상인지 아닌지부터 분명히 하라는 거예요. 그게 분명치 않은데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나요? 적어도 지금까지 보인 윤 대통령의 말이나 통일부·국방부 장관 인사, 그리고 국민의힘 쪽에서 나온 정치적 수사들을 종합하면 압도적 힘에 의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돼요.”
- 북한은 도발을 계속하는데, 우리는 관용적 태도로만 일관해야 할까요. 문재인 정부 때에도 북한은 미사일을 여러 차례 발사했고요.
“적어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멈췄죠. 그러다 김정은 위원장이 5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반발을 이겨내지 못해 결렬됐어요. 북한은 그렇게 빈손으로 돌아온 후 핵을 고도화하는 일정에 들어갔어요. 북한은 하노이 회담 무산 후 10개월 가까이 집단평가를 한 것 같아요. 협상에 나선 주역이 김정은·김여정이 아니었으면 다 숙청됐을 것으로 봐요.”
- 정부·여당의 잇따른 실정 논란에도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봅니까.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이 분발해줘야죠. 밖에서 보면 이재명 대표가 좀 지쳐 보여요. 때론 자신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대선 때부터 긴 시간 쉼없이 온 데다 정치적 탄압이 분명한 수사, 단식 등이 이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죠. 혼자 하려 하지 않으면 돼요. 통합과 연대를 키워드로 당 안팎의 모든 자원들을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 원로와 중진들, ‘원칙과 상식’ 다 만나서 도와달라, 앞장서달라 하면 다음날부터 공기가 바뀔 거예요.”
- 김민석 의원은 신당 창당을 시사한 이낙연 전 대표와 비명계를 향해 “전형적인 사쿠라 노선”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고 비난했어요.
“김 의원의 언급에 대해서는 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요, 이낙연 신당은 분명히 반대합니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분열의 오명만 쓴 채 긴 후회가 남으리라 생각해요. 힘들어도 당내에서 혁신안을 마련해 단합할 문제예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겠죠.”
- 이낙연 전 대표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공동 신당 창당설도 나오고 있어요.
“설마 이준석과 손잡기야 하겠습니까.”
- ‘이재명 사당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한 표현이라 생각하는데 소통 부재인 것은 틀림없어 보여요. 이 대표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을 잘 안 만나려 하거나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요.”
임 전 실장은 전남 장흥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쌀집을 운영해 살림은 비교적 넉넉했다. 교육열이 뜨거운 어머니 뜻에 따라 온 가족이 서울(중랑구 묵동)로 이사한 것은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교 2학년에 올라갈 무렵까지 신장염을 앓아 결석이 잦았던 그는 점점 성격이 내성적으로 됐다고 한다. 재수를 거쳐 1986년 한양대 공과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했다.
- 꿈이 뭐였습니까.
“특별히 그런 것은 없었고, 허름한 연구실에서 밤새는 모습만 상상이 됐어요.”
- 그런 사람이 어떻게 1989년 전대협 의장이 돼 수천, 수만명의 학생들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임수경의 평양 축전 참가 등을 주도하고 신출귀몰한 모습으로 10개월간 경찰의 수배망을 따돌렸나요(1989년 검거된 그는 1990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판결을 받았고, 1993년 5월 출소 후 복학했다).
“1986년 10월 ‘건국대 사건’이 발생하고 시국이 어수선했어요. 2학년 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노래패 동아리 소리개벽에 가입했죠. 처음 가두시위에 참가한 게 1987년 6·10항쟁이었어요. 그 안에 고통이 배어 있긴 하지만 거의 축제 같은 분위기였어요. 시민들이 박수쳐주고 숨겨주고 빵과 물을 주며 응원했으니까요. 그렇게 민주화운동을 처음 경험했어요. 그러다 떠밀리다시피 한양대 학생회장을 맡게 됐고, 전대협 의장이 됐어요. 시대의 한 장면에 우연히 제가 있었고, 무서웠지만 그 책임에서 도망가지 않았을 뿐이에요.”
- 전대협 의장 임종석은 정치인 임종석에게 어떤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정치권에 와서 배운 것도 많지만, 30여년 전 전대협 의장으로서 겪은 경험들이 상당 부분 저를 키운 거겠죠. 제가 정치를 하게 된 직접적 계기였고 때로는 공포 속에서, 때로는 번뇌 속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봤던 경험들이 이후에도 뭔가 결정해야 할 때 책임지고 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는 1999년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돼 제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2014년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하다 19대 대선을 앞둔 2016년 말 문재인 캠프에 후보비서실장으로 합류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 과거 한 보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도를 지향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적이 있어요.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게 제가 정치하면서 갖고 있는 신조예요. 과거를 돌아보면 열린우리당 시절에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진보적으로 행동해서 실패한 사례가 많아요.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다가 아무것도 개정하지 못했어요. 당시 한나라당이 협상을 제안했는데, 개정하자는 내용이 깜짝 놀랄 만큼 긍정적이었어요. 늘 악용되던 7조를 폐지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2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이었거든요. 그때 받아들였다면 사문화에 가깝게 개정할 수 있었고, 지금쯤 국가보안법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 정치를 통해 꼭 이루고자 하는 게 있나요.
“한반도 평화공존이죠. 남북의 항구적 평화가 유지되면서 교류협력을 하는 적극적 평화 말이에요.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철도죠. 남북만 연결되면 중국이 이미 완성한 고속철도와 연결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우리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새로운 기회가 열려요. 중국을 통해 시베리아, 유럽으로 가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남북한 8000만에 동북삼성 1억명을 더해 1억8000만명의 경제권이 형성되고 육로를 통해 일일생활권이 되는 거예요. 저는 현시점에 통일을 바라지 않아요. 통일은 30년 정도 묻어놔도 좋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평화공존이고, 공동의 번영을 모색해가는 거예요.”
인터뷰를 시작하고 어느새 4시간이 지났다. 차기 대통령 선거 도전까지 생각하냐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권력의지를 앞으로 가져보려 해요.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서 모셔보니까 그 자리는 안 갈 수만 있으면 안 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두려운 일이죠. 하지만 다시 제도권 정치로 돌아온 이상, 민주당을 신뢰받는 정당으로 혁신하는 일, 윤석열 정부를 총선에서 심판하는 일, 그리고 2027년 정권을 교체하는 모든 일에서 중심에 서보고자 합니다.”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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