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경영진으로… 유통家 법조인 전성시대

양범수 기자 2023. 12.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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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CJ·SPC·BGF그룹 대표에 판사·검사 출신
롯데지주·우아한형제들·홈플러스·OB맥주는 부사장
“컴플라이언스, 노사 관계, 합리적 의사결정에 도움”
전문가 “유통업, 정부 규제 많아… 수요 늘 것”

빠르게 변화하는 유통업계에서 법조인 출신 경영진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통업계는 전통적으로 ‘OO맨’으로 대표되는 순혈주의와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규제 사항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리스크 대응에 유리한 법조인의 강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 성장 주도한 쿠팡·BGF, SPC·CJ는 리스크 대응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강호성 CJ 경영지원부문 대표, 강선희 SPC그룹 대표, 홍석조 BGF 그룹 회장 등이 법조계 출신 유통 업체 최고 경영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장이나 대표가 아니더라도 부사장 등까지 고려하면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 연태준 홈플러스 부사장, 박은재 롯데지주 부사장 등이 법조계 출신 인사다.

강한승 쿠팡 대표는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뒤 김앤장 변호사로 근무하며 기업들의 법률 조언을 하던 중 2020년 쿠팡 경영관리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강 대표는 쿠팡Inc.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비롯해 유통시장에서 혁신성장을 견인하는 한편, 중소기업 상생과 지역 균형 발전에도 큰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팡은 강 대표 선임 이후 고속 성장은 물론 영업이익 흑자 달성에도 성공했다. 쿠팡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누적 매출액 23조3467억원, 영업이익 4448억원을 기록했다. 성장 둔화에 놓인 국내 유통시장에서 지난해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유통업계를 놀라게 했다.

2020년 쿠팡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13조9236억원, 영업손실은 5504억원이었으나, 지난해 26조3560억원의 매출액과 9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 규모를 줄였다.

보광그룹 오너 2세인 홍석조 회장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까지 지낸 대표적인 법조계 출신 경영자로 꼽힌다. 2007년부터 BGF리테일 대표를 맡아 편의점 CU를 점포 수 1위 브랜드로 키웠다.

홍 회장이 대표를 맡으면서 BGF리테일은 편의점에 사용하던 훼미리마트(Famliy Mart) 브랜드를 CU로 변경(2012년)했고, 2012년 7200여개이던 점포 수는 지난 7월 말 기준 1만7400여개로 늘어났다. 몽골·말레이시아 등 글로벌 점포 수도 500호점을 넘겼다. 홍 회장은 2014년 말 대표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뒤 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홍 회장과 강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성장을 이끈 것과 달리 리스크 대응과 대외협력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한 경우도 있다. 강호성 CJ 경영지원 부문 대표와 강선희 SPC그룹 대표 등이다.

CJ ENM 대표를 지내고 CJ 지주사 경영지원대표로 선임된 강호성 대표도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거친뒤 2013년 법무법인 광장에서 CJ 법무실장으로 유통업계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강 대표는 변호사로 있으면서 가수 싸이의 군 재입대 사건 등을 맡아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하던 중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통해 영입됐다.

강 대표는 CJ ENM이 ‘프로듀스101 순위 조작 사건’으로 고초를 겪을 당시 대표직에 선임돼 해당 문제를 다뤘으며,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 논의도 이끌어냈다. 지주사에서는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해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민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지낸 뒤 노무현 정부의 첫 여성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강선희 SPC그룹 대표도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SK그룹에서 지속가능경영본부장을 지내기도 한 강 대표는 지난 3월 SPC에 영입돼 법무·대관·홍보 등 대외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그룹 계열사 SPL에서 20대 근로자 끼임 사망사고 발생 이후 영입된 것으로,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 등에 대응하고 있다.

◇ 부사장으로 이름 올린 법조인도 다수… “정부 규제 많아, 수요 늘 것”

유통기업 부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다수의 법조계 출신 인물들도 대외협력·법무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20년 11월 롯데지주 준법경영실장 부사장에 선임된 박은재 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과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을 지냈으며, 같은 시기 우아한형제들로 영입된 함윤식 부사장은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연태준 홈플러스 부사장과 구자범 오비맥주 부사장은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연 부사장은 2016년 홈플러스 대외협력부문장에 선임돼 준법경영 부사장직을 맡고 있고, 구 부사장은 2007년 법무 담당 이사로 오비맥주에 합류한 뒤 2020년 11월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유통기업의 법조인 영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와 함께 ‘컴플라이언스(법규준수·준법감시·내부통제)’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컴플라이언스 역량이나 리스크 대응은 법조인 출신 경영진에게 회사가 기대하는 기본치”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로펌에 법률 자문을 맡기면 여러 가지 안을 만들어주고 경영진이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는데, 역량이 있는 법조인을 경영진으로 들이면 내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스스로 법률 자문을 마친 뒤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규제 환경과 관련해서도 법령 해석에 따라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법조인 출신 경영진에 요구되는 것이 추세라고 해당 관계자는 덧붙였다.

특히 노사 관계에서 법조인 만큼 효과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할 적임자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법조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원칙 중시’인데, 경영진으로 적을 옮기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면서 “노사관계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기 때문에 노조에서도 지나친 요구나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했다.

예를들어 쿠팡의 경우 지난 4월 본사 로비를 불법 점거한 뒤 천막 농성을 이어오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가 천막과 불법 현수막을 자진 철거했다. 지난해 6월 23일부터 폭염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온 지 290여일 만이다.

전문가들은 유통업체 경영진에 이름을 올리는 법조인 출신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영홍 유통법학회장은 “유통업계는 정부 규제가 많은 업종”이라며 “과징금·과태료 등의 이슈가 언제든 생길 수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도 강해지고 있어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법조계 출신 경영진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조계 출신 대부분이 외부 인사라는 점에서 경영 깊숙한 곳까지 관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모든 문제를 법무적 시각으로 해석해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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