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126) “한국형 LNG 화물창 결함 책임, 가스公에” 1150억 배상 판결 이끈 화우

이현승 기자 2023. 12.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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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公, 조선3사와 ‘LNG 화물창’ 국산화 추진
설계대로 건조했더니 결함 발생...운항 못해
선주 SK해운, 미운항 손실 등 청구해 승소
화우, 화물창 구조 시각화해 재판부 설득
“국책사업 귀책 판단한 선례적 판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을 중국과 양분하는 한국 조선업체들이 실적 발표 때마다 그 영향력을 확인하는 초 슈퍼 갑(甲)이 있다.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다. 우리 기업은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제작할 때마다 1척당 100억원의 기술사용료(로열티)를 GTT에 낸다. 아무리 업황이 좋아도 흑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LNG 운반선은 기체 상태인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 초저온에서 600분의1로 압축·액화해 저장·운반한다. LNG 저장탱크인 화물창 기술의 핵심은 단열이다. 내부 온도가 영하 162도를 유지해 LNG가 기화(氣化) 되지 않도록 하면서 외부에는 냉기가 전달되지 않아야 한다. GTT는 이런 단열 시스템이 잘 갖춰진 멤브레인형(선박과 화물창이 일체된 구조) LNG 화물창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조선업체들이 저가를 무기로 점유율을 끌어올리자 2004년 한국 정부는 우리 업체의 시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형 LNG 화물창(KC-1) 기술 개발을 국책과제로 추진했다. 육상용 LNG 저장탱크 기술을 보유한 한국가스공사(공사)가 설계를 맡고 삼성중공업 등 3대 조선사가 배를 건조, SK해운이 선주로서 선박을 운영하기로 했다. 2018년 초 선박 2척(SK세레니티, SK스피카)이 완성됐다.

하지만 선박 두 척은 결함으로 인해 한 번도 운항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과 SK해운은 선박 건조를 위해 대출 받은 돈과 선박 수리·유지 비용, 대체선 투입 비용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고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2019년 SK해운은 공사에 미운항 손실 1154억원을, 삼성중공업은 선박 수리비 80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공사는 법무법인 선율, 율촌을 선임해 SK해운에 대체선을 투입하느라 손실을 봤다며 1697억원을 청구했다.

국산 기술로 만든 LNG 화물창 KC-1이 탑재된 17만4000㎥급 LNG선 'SK 스피카' 호. / 한국가스공사 제공

약 3년여 간의 소송 끝에 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이원석)는 공사가 화물창 설계를 잘못했다고 인정하면서 SK해운에 1154억원, 삼성중공업에 726억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사의 청구는 기각했다. SK해운은 청구한 손해배상액 전액이 인정됐다. 이대로 확정된다면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금액 중 역대 최대일 전망이다.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시진국(사법연수원 32기) 변호사는 “LNG 화물창 기술과 관련해 기술 개발사의 주의의무 범위와 내용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판시한 선례적 판결”이라고 했다. 이어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서 어떤 제품의 기본 설계자가 직접적인 계약 상대방이 아닌 선주 등 제3자에 대해서도 불법 행위 책임을 진다는 판시를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도 말했다.

◇ 판사들도 고개 갸우뚱한 화물창 설계 공정… 시뮬레이션으로 ‘일타강의’

SK해운 측은 배를 운항하지 못한 책임이 전적으로 공사의 화물창 설계 부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사의 설계대로 삼성중공업이 화물창을 만든 결과 콜드스폿(cold spot)이 발생해 배 운항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으므로 손해를 공사가 배상해야 된다는 것이다. 콜드스폿이란 선체 특정부분 온도가 국제해사기구가 정한 허용최저온도에 비해 낮은 상태를 말한다. 선박 금속에 콜드스폿이 반복되면 최악의 경우 선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공사는 설계를 잘못해 콜드스폿이 발생한 게 아니고 시공상 하자, 즉 삼성중공업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화우는 이미 업계에서 안전성을 인정 받은 GTT의 화물창 설계와 공사의 설계에는 다른 부분이 있으며 그 차이가 콜드스폿의 원인이 됐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명하기로 했다. LNG 화물창에는 단열을 위한 여러 층의 막(膜, 멤브레인)이 설치된다. GTT의 경우 막 자체나 막 사이사이 빈 공간을 최소화 한 반면 KC-1은 일부 빈 공간을 채우지 않았다. 화우가 분석을 의뢰한 국내외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빈 공간을 통해 저온의 질소가 화물창 내부를 순환하면서 콜드스폿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SK 스피카호에 탑재된 화물창 KC-1. / 한국가스공사 제공

이 사건이 배당된 재판부는 다양한 민사 사건을 다루지만 기술 쟁점을 치밀하게 다루는 지식전담 전담 재판부가 아닌 만큼 관건은 판사들을 얼만큼 이해시키느냐였다. 화우는 지식재산그룹 소속 이세정(36기) 파트너변호사를 합류시켰다. 이 변호사는 기업의 특허권, 영업비밀, 산업기술, 저작권 관련 법률 자문과 소송 업무를 맡으며 복잡한 기술 쟁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간명하게 설명하는 데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우는 변론 과정에서 프레젠테이션(PPT)에 화물창의 구조와 콜드스폿의 발생 원인을 이미지와 3D 시뮬레이션 동영상으로 만들어 재판부에 제시했다. 판사들이 재판 중에 “우리는 이과생이 아니어서 깊은 분야까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발언한 것에서 착안해 서면이나 구두 변론을 추가하기보다 한 눈에 논점이 이해가도록 시각화했다. PPT를 마친 후 구두로 변론할 때와 비교해 재판부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법무법인 화우가 선박 결함인 콜드스폿을 설명하기 위해 PPT에 넣은 동영상 캡처. / 법무법인 화우 제공

재판에서 하자 여부를 다투는 LNG 화물창 설계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이라서 생긴 어려움도 있었다. 화우는 콜드스팟이 생긴 원인 분석을 외국 전문기관에 의뢰하려 했는데, 국가핵심기술을 외국에 제공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 승인이 필요했다. 의뢰 준비부터 최종적으로 결과물을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 “운항 중단 안해도 됐다” 주장에 “재난 일어날 수 있어” 반박

재판부는 “공사는 KC-1 화물창이 기본적인 안전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자 없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해 콜드스폿 등의 하자가 발생했다”며 SK해운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 들였다.

화우는 공사가 새로운 공법으로 화물창을 설계하면서 CFD(Computational Fluid Dynamics, 동적인 움직임을 컴퓨터를 이용해 계산해 시뮬레이션 하는 것)는 안했고 CMT(Closed Mock-up Test, 실물모형 검증)는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사는 테스트를 했다고 해도 콜드스폿이 발견됐을 거란 보장은 없다고 맞받았다.

이에 화우는 GTT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GTT가 과거 새로운 화물창 설계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CMT 결과 콜드스폿이 발생할 위험성이 발견되자, 일단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한 뒤 개발을 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에 재판부는 “공사가 질소 유동에 의한 콜드스폿의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자체를 공사의 귀책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공사는 “콜드스폿 등 하자가 있었다고 해도 SK해운이 운항을 반드시 중단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도 폈으나 이 역시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화우가 “하나의 콜드스폿이라도 선박 전체가 폭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재앙 수준의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주장한 것을 받아들였다. 세월호 사건 이후 선박 운영과 관련한 안전 의무를 엄격하게 보는 재판부 경향도 영향을 줬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화우 시진국(32기) 변호사, 이세정(36기) 변호사, 박상혁(43기) 변호사. / 화우 제공

이 사건은 공사가 지난달 항소를 제기하면서 판결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공공기관 주도의 국책사업과 관련한 분쟁에서 선례적 판결이 될 수 있다고 화우는 분석했다. 박상혁(43기) 파트너변호사는 “공사가 우리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는데, 재판부는 공사가 기본 설계를 완성하고 주도적으로 개발한 만큼 책임 지는 것이 맞다고 판시를 했다”며 “향후 유사한 분쟁이 있다면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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