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호의 Law&Life] 남은 자들의 입증 책임과 사망 보험금
[홍명호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사업에 실패한 가장이 깜깜한 방파제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건다. 잠깐의 통화 후 그의 차는 바다로 돌진하는데 공교롭게도 콘크리트 시설물에 바퀴가 걸려서 바다로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다시 차를 후진한 후 다른 방향으로 몰아 결국 바다로 빠져 생을 마감한다.
소설 같은 이 장면은 실제 소송에서 확인된 사실에 대한 묘사다.
유족은 보험금을 청구하고 보험사는 자살을 이유로 면책했는데 소송 결과 자살 입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목격자도 있고 부채에 대한 간접증거가 있었음에도 소송에서 보험계약자의 자살은 인정되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왜 죽었는지에 대한 증거 찾기는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이와 유사한 판결은 상당히 많은데 이러한 사건에서 우리 법원은 대개 경우 유족에게 온정적인 판결을 하고 있다. 아마도 법원은 보험을 유족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법원이 보험계약의 기능과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며 취약계층이나 약자에 대한 사회정책은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마련돼야 정상이다. 보험계약으로 사회정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사회 안전망의 일종으로 인식되는 보험은 사람 삶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고의적인 자살과 같은 경우 보험금 지급 문제가 논란이 된다.
기본적으로 보험계약은 ‘우연성’을 필수적 요소로 한다. 인보험 계약에 의해 담보되는 보험사고 요건 중 ‘우연한 사고’ 또는 ‘우발적인 사고’라 함은 사고가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즉, 보험금 청구자는 사고의 우연성이나 우발성을 입증해야 하며, 보험자는 고의적인 사고의 경우 면책사유를 증명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보험약관 체계의 구성이 잘못되어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고의 우연성 내지 우발성에 관해서는 보험금 청구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서울중앙지법 2021가단 5056882 판결, 대법원 선고 2003다 35215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 시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이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보험자에게 있다. 이에 따라 보험자는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2011다113066 판결).
이처럼 보험약관 체계의 구성이 잘못돼 있는 것이 문제다. 보험계약의 원칙과 입증책임 문제를 바로잡고, 사회적 제도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자살률을 낮춰야겠다.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보험 제도적 측면에서 자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보험계약은 다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우연성’이라는 보험의 기본 정신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개별 사안에 대한 각 기관의 온정적인 태도는 전체적인 사회의 방향성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
우리는 자살을 막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홍명호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 법무부 대한법률구조공단 감사, 손해보험협회 보험분쟁예방협의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