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건배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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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사 한번 하시죠." 갑자기 요청이 훅 들어온다.
이런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건배사가 등장한다.
바로 건배사를 요청한다.
이야기인즉 며칠 뒤에 어르신들과 연말 모임을 하는데, 자기가 제일 막내라 뭔가 임팩트 있는 건배사를 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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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하면 홈런…좌중은 ‘깔깔깔’
이순신 장군처럼 “나를 따르라~”
나라 구한 수졸 된 듯 혼연일체
화합 돕고 유쾌 바이러스 퍼뜨려
힘차게 외쳐 연말 ‘핵인싸’ 돼볼까
“건배사 한번 하시죠.” 갑자기 요청이 훅 들어온다. 요즈음 연말 모임으로 매일 저녁 일정이 꽉 찼다. 이런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건배사가 등장한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연말 모임에서 매번 외쳐야 하는 건배사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게 ‘위하여’다. 진부하다. 재미없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자아, 지금부터 영업 비밀을 밝혀드리리다.
1. 술보다 건배사가 고픈 친구 놈
고향에서 친구 한놈이 올라왔다. 모두 7명이 모였다. 근데 이놈이 술 사고 밥 사주는 것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배사를 요청한다. 이야기인즉 며칠 뒤에 어르신들과 연말 모임을 하는데, 자기가 제일 막내라 뭔가 임팩트 있는 건배사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말했다. 너는 평소에 공부를 잘해야지 벼락치기로 하려니까 그동안 한 건배사를 기억 못하는 거다. 꿀밤 한대 쥐어박고 비법을 전수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2. 숙종과 장희빈
이 건배사는 했다 하면 홈런이다. 깔깔깔, 낄낄낄, 다들 너무 좋아한다. 어디서 들은 건배사를 약간 각색한 것이다. 이 건배사를 하면 나를 인간문화재처럼 본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숙종이’ ‘희빈에게’ ‘사약을 내리면서 하는 말’ ‘원샷’. 각각의 말을 선창하면 좌중이 이를 따라 하는 방식이다. 2절이 또 있다. ‘사약을 받은’ ‘희빈이’ ‘숙종에게 하는 말’ ‘잔 볐다’. 비어 있는 사약 잔을, 아니 술잔을 다시 채우면 된다. 어떠신가? 손뼉 치고 싶지 않은가?
3. 이순신
이건 어르신이나 높은 분들과 모임을 할 때 사용한다. 또 친구 중에 좋은 일이 있을 때 종종 꺼내 드는 카드다. 이 건배사도 각색한 것이다. 그래도 히트 상품 중의 하나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외쳤다 하면 혼연일체, 하나가 된다. 이순신 장군께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백성을 하나로 만든 것처럼. 먼저 모임에서 가장 높은 분, 또는 주인공을 앞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분을 이순신으로 정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수졸이 된다. 그런 다음, 앞에 나온 분이 선창한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수졸들은 ‘와아∼’. 정말 나라를 구하는 느낌일 것이다. 또 다른 버전이 있다. 선창을 한다. ‘전군, 진격하라∼’. 그러면 좌중은 ‘와아∼’ 하며 술잔을 부딪치면 된다.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촌철살인의 건배사는 분위기를 180도 바꾼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건배사 한마디로 모두를 집중시킨다. 또 아무리 오래 못 본 사람들끼리도 어제 본 듯 한묶음으로 묶어낸다. 처음 본 사람과도 쉽게 화합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널리 퍼진다. 좋은 바이러스라 유쾌·상쾌·통쾌를 선물한다. 그리고 건배사 하나 잘하면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 모였다 하면 찾게 되는 그야말로 핵인싸가 된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있을까? 건배사를 잘 이용해보자. 그리고 창작해보자. 생각보다 쉽다. 야유를 받아도 시도해보자. 그러다보면 건배사의 달인이 된다. 삶의 활력을 주는 기분 좋은 소통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가 건배사를 잘했으려나? 궁금하다. ‘따르릉’ 전화가 왔다.
“친구야, 대박 쳤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서로 이순신 장군 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 나라를 구해도 몇십번 구했다. 고맙다. 앞으로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할게. 새 건배사 출시하면 꼭 알려주라.”
새 건배사라….
근데 이제 뭘 먹고 살지? 영업 비밀을 다 밝혔으니.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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