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직도 당신 생각에 꿈을 꿉니다”
손수 써 내려간 수필·시 120편 책으로 발간
6·25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전쟁 이후 70여 년간의 삶을 문학으로 풀어냈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참담한 전쟁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전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서울 은평구는 할머니 18명이 손수 써 내려간 수필과 시 120편을 담은 문집 ‘북한산 큰 숲, 흰 국화꽃’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전몰군경미망인회가 제작을 주관하고, 은평구청이 비용을 지원했다.
이들의 사연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951년 강원 양구군 도솔산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남계숙(74)씨가 은평구에 사는 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들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담아 유공자 가족의 긍지를 스스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대부분이 80대 이상인 데다 지병으로 요양원에 입원해 있거나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도 있어 진행 속도는 더뎠다. 미망인회에서 글공부부터 문학 교육까지 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했기 때문이다.
유순분(96)씨는 전쟁으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막내아들을 홀로 키워낸 이야기를 수필로 썼다. 1951년 겨울 두 아들이 고된 피란살이에 병을 얻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까지 경기 양평군 용문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스물셋 임신한 몸으로 혼자가 된 유씨는 성냥갑 만드는 일을 하며 막내아들을 키워냈다. 지금은 증손주를 넷이나 둔 유복한 가정을 일궜다. 그는 “텅 빈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았나 싶지만,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자부심에 견뎠다”고 적었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을 전쟁으로 잃은 이월출(88)씨는 “나에게는 든든한 남편이었고 나라에서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씩씩한 군인이었다”며 “이렇게 남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당신의 처(妻)가 일생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10여 년간 시집살이를 하면서 큰조카를 양자로 삼아 키워낸 설움도 담았다.
황해도 백천지구에서 전사한 남편의 유해를 아직 수습하지 못했다는 김차희(95)씨는 “내게 남겨진 유일한 유산은 젊은 시절에 찍은 당신의 빛바랜 흑백 증명사진뿐”이라며 “당신이 구순이 넘은 내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라고 적었다.
‘그리운 당신’이란 제목의 시를 남긴 미망인회 서울지부장 구숙정(65)씨는 “햇살이 창문에 찾아오면 아직도 순간마다 당신 생각에 꿈을 꿉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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