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챗GPT와 원전 사이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인공지능(AI)과 원자력 발전이 한 예다.
그렉 아벨은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해서웨이를 이끌던 찰리 멍거 부회장이 사망한 뒤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2006년 버크셔가 인수한 미드아메리칸에너지(현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 BHE)에 입사해 CEO(최고경영자)가 된 인물이다. 그의 부상은 버핏의 에너지 투자 비중확대와 맞물려 있다.
버핏은 버커셔해서웨이를 통해 옥시덴탈, 셰브론 등의 석유·가스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천연가스를 염두에 두고 일본 종합상사의 지분도 매입했다. BHE의 자회사들은 풍력, 태양열, 지열, 천연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사업을 전개해 왔고, 원전도 그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설립한 원전기업 테라파워가 서부 와이오밍주의 폐쇄된 석탄 발전소에 소형모듈원전(SMR)를 짓기로 했는데, 발전소 부지의 소유자이자 협력 파트너가 BHE의 자회사 퍼시피콥이다.
원전에 대한 관심은 버핏보다 게이츠가 더 깊다. 게이츠는 "온실가스 배출 없이 24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말해 왔다. MS는 SMR을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전력원으로 쓰기로 했다.
MS가 2019년부터 130억 달러를 투자한 오픈AI의 샘 알트만도 원전 담론에서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차세대 SMR 기업 오클로를 세우고 상장을 추진해 왔다. 알트만은 "보다 나은 미래는 AI와 에너지 기술개발에 달려 있다"며 "값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인 원전에 베팅했다. AI에 필요한 전기를 원전에서 공급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챗GPT로 상징되는 AI와 원전이 맞물리는 세계적 흐름과 달리 민주당은 원자력 발전 분야 예산 1800여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원전 생태계 지원사업 1000억원,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 333억원, 원전수출 보증사업 250억원. 원자력 생태계 지원사업 112억원 등이다. 심지어 혁신형 SMR개발사업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1년 제10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정식 제안된 것이다. 당시 여야가 함께 포럼을 만들고 공동의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 민주당 후보이던 이재명 대표의 공약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문재인정부의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한 SMR 얼라이언스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SMR얼라이언스는 원전 종가인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게이츠의 테라 파워에 3000억원을 투자한 SK(주)와 SK이노베이션, SMR 파운드리업체로 거듭 나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와 현대건설, 삼성물산, HD현대, 포스코 E&C 등 국내 주요 원전 관련업건설업체들이 망라돼 있다. 2035년까지 최대 5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SMR 시장을 다음 세대의 먹거리로 삼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왔던 셈이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수원은 2012년 세계 최초 SMR인 스마트를 개발하며 한발 앞서 나갔던 차세대 원전 개발 경쟁에서 밀렸다. 그러는 동안 중국은 최근 세계 최초로 SMR의 일종인 고온가스 냉각로(HTGR) 원전을 건설해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 당국은 "원전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라고 자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수원과 한국전력의 핵심 원전인력은 해외로 떠밀려갔고, 중소 협력업체들은 상당수가 도산했다. 경상남·북도의 일자리와 경제는 그만큼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고 수출엔진으로 세우자는 게 예산의 취지다.
이 예산을 '0'으로 만든 것은 지역의 고용을 저버린다는 점에서 '탈민생'이며, SMR경쟁국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탈안보'고, 후세대의 밥그릇을 걷어찬다는 점에서 '탈미래'다. '원전제로'인 상태로 '넷제로'가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통찰'이 1이라도 있다면, 이제는 '탈진영'해야 하지 않을까?
강기택 산업1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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