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천국의 그늘… “우리 집 앞 물류센터 안돼” 주민들 강력 반발

강다은 기자 2023. 12. 13.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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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새 3000개 급증해 기피 시설로
“대형트럭에 아이들 위험” 촛불시위
아파트촌 앞에 25층 높이 대형 물류센터 - 12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완공을 앞둔 아파트 25층 높이(87m)의 물류센터 건물과 그 주변 모습. 주민들은 “물류센터 때문에 주변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에 사고 위험이 커지고 소음으로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며 물류센터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2일 오후 경기 의정부 고산동 고산잔돌근린공원. 인근 12개 아파트 단지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촛불 집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손에 촛불과 함께 ‘물류센터 OUT’이란 피켓을 들고, “소음과 분진, 교통사고 등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들이 집회에 나선 것은 인근에 들어설 축구장 5개 크기(연면적 10만4000㎡)의 물류센터 건설을 막기 위해서다. 고산동 물류센터 주변으로 약 1만2000가구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돼 있고, 길 바로 건너편 50m 거리엔 500가구 규모 아파트가 또 건설 중이다. 불과 200~300m 거리에는 초등학교도 있다. 고산신도시연합회 전수만 총무는 “10톤이 넘는 대형 트럭이 아이들 등하굣길을 지나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며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물류센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잘 것”이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물류센터 건설 계획이 백지화될 때까지 촛불 집회와 1인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배송 급증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물류센터가 지역 주민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배송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소비자와 가까운 주거지와 학교 부근까지 진출하면서, 주민 안전과 주거 환경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다. 폭증한 물류센터 때문에 새벽배송·당일배송이 가능한 ‘배송 천국’이 됐지만, 그 이면에선 물류센터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년 100~200곳씩 늘던 물류센터는 쿠팡·컬리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부터 매년 300곳 이상 늘더니,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2022년에 매년 500~600곳씩 급증했다. 2014년 전국에 1817개였던 물류센터는 현재 4903개. 10년 만에 약 3000개 이상 늘었다. 이 때문에 물류센터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물류센터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도 이커머스 성장에 따른 물류센터 급증으로 주민과 마찰이 잇따르자, 입지와 트럭 운행 횟수 등을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8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신도시 초입인 서울지하철 4호선 별내별가람역 인근에는 아파트 25층 높이의 대형 물류센터가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외벽엔 입주할 기업을 찾는 ‘상온 창고 임대’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 물류센터 입구에 서면 대단지 아파트가 코앞에 보인다. 물류센터 반경 1㎞ 안에 있는 5개 아파트 단지에는 약 2700가구가 살고 있고, 단지 내에 초등학교도 있다. 이곳 주민들은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초등학교 등교 거부 시위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물류센터 입주를 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어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별내동 주민들로 구성된 별내발전연합회 관계자는 “배송 트럭에서 나오는 매연이나 교통사고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옆에 들어선 높은 건물 때문에 늘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물류센터가 완공되더라도 민원 제기와 반대 시위를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앞, 주거지 점령한 물류센터

물류센터 인근 주민들에게 물류센터는 단순한 혐오 시설을 넘어 안전과 주거 환경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전국 물류센터의 약 40%가 몰려 있는 경기도에서 이런 갈등은 심각하다. 경기 남양주시 청학리 9개 아파트 단지 맞은편엔 3년 전 쿠팡물류센터가 들어섰다. 지역 주민들은 이후 화물차들의 불법 유턴과 24시간 켜져 있는 물류센터 조명에 의한 빛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물류센터 맞은편 아파트 단지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장인하(43)씨는 “민원을 넣어 ‘아파트 바로 앞 좁은 도로로는 화물차가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는 약속까지 얻어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주거지뿐 아니라 학교와 도서관 같은 교육 시설까지 피해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복합문화공간이나 쇼핑몰 등과 달리 일자리나 관광객 유치가 전혀 안 되는 건축물이라는 점도 물류센터 도입 반대 이유다.

그래픽=이지원

경기도 광주 초월초 인근엔 2021년에만 물류센터 4곳이 준공했다. 대형 화물트럭이 학교 앞 2차선 도로를 지날 때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자욱한 매연이 번진다. 이 학교 한 학부모는 “안전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근처에서 놀지 못해 교문 앞에 문구점이나 분식점도 모두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2021~2023년 경기도에 들어선 연면적 4500㎡ 이상 물류센터 187개 중 44개가 초등학교나 주거지로부터 반경 200m 내에 위치해 있다.

◇절차상 문제 없는데, 민원에 공사 중단…기업도 난감

주민들의 성화에 물류센터를 운영하거나 사용하는 기업들도 난처한 상황이다. “밤에는 화물차 출입을 금하라” “소음이 심하다” 등 항의에 시달리고 있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건설을 시작해도 잦은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지연되거나, 입주 기업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대기업 식품회사는 지난 2월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냉동물류센터 건축 허가를 받고, 착공했다. 이 같은 소식을 알게 된 주민들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반대하면서 지난 10월 공사가 중단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행정 절차에 문제는 없었지만, 주민 반대가 심해 잠정 중단했다”고 말했다. 2021년 건축 허가를 받은 경기도 양주시의 물류센터 역시 공사가 무기한 지연되면서 허가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갈등 해결을 위해 물류센터 크기와 입지 등에 관한 허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주거지 반경 500m 내 고도 제한’ ‘어린이보호구역 1㎞ 내 건설 불허’처럼 난립 방지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해외에서는 속속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폰타나 지역은 ‘국제 물류 허브’로 불릴 만큼 물류센터가 많은데, 이 지역에선 트럭 통행을 하루 25대, 주간에는 5대, 야간에는 20대로 제한하며 조건부로 물류센터 건설을 허가한다거나, 10만 평방피트(9290㎡) 이상의 새로운 물류 프로젝트를 집, 학교 및 의료 센터에서 최소 1000피트(304㎡) 떨어진 곳에 두도록 요구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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