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왕따 겪고 철거촌 생활도… 경험 넣되 개인사 넘어야 성공

이영관 기자 2023. 12. 13.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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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10] 웹툰 ‘유쾌한 왕따’ 김숭늉
김숭늉 작가는 “철거촌에선 나쁜 사람이 아닌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을 봤다. 크면서 그때를 곱씹었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웹툰 ‘유쾌한 왕따’가 9년 전 연재될 때만 해도 지금의 성공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가감 없이 그려, 대중성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 그러나 이 웹툰의 2부가 지난 8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개봉한 데 이어, 1부 역시 웹툰과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작품 배경을 공유하는 영화 ‘황야’와 드라마 ‘마켓’(가제)을 더하면, 하나의 웹툰이 네 개의 영상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는 것. 원작자인 김숭늉(38·본명 김동균) 웹툰 작가는 “‘유쾌한 왕따’는 매니악한(소수가 광적으로 좋아하는) 만화다.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제 만화를 보고 ‘답답하다’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그걸 즐긴다”고 했다.

웹툰 ‘유쾌한 왕따’는 한순간도 유쾌하지 않지만, 소수를 배척하는 현실을 극한으로 묘사해 설득력을 얻은 작품이다. 1부에서 왕따당하던 중학생 ‘동현’ 등은 학교가 무너지며 그들을 괴롭히던 무리와 함께 고립된다. 학생들은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괴롭힐 대상을 찾고 서로를 죽인다. 탈출에 성공한 일부 학생이 한 아파트 구성원으로서 외부 집단과 갈등하는 2부에 이르면, 희망은 아예 사라진다. 소수가 죽임을 당하고,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초기 의도는 ‘가학적 개그물’이었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경험을 들려줬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오로지 외톨이라는 느낌이 절망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 승당마을 철거촌에서 지냈던 기억도 생생하다. 가족 단위의 30여 명이 막사에서 함께 생활하니 싸움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제 경험이 인물들에게 조금씩 들어가 살이 붙다 보니 개그물과는 멀어졌다.”

김숭늉 작가가 직접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포스터. 무너진 건물 가운데 서 있는 남녀가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 원작 웹툰의 중학생 남녀 ‘동현’과 ‘수현’을 각색한 인물이다. /더그림엔터테인먼트

2011년 데뷔한 김숭늉은 현실과 닮은 디스토피아를 통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고시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좀비물 ‘사람 냄새’(2017)에도 작가의 체취가 묻어 있다. 그러나 그는 “경험으로 시작해 경험으로만 끝나는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며 “제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만화로 그리던 때가 있었다. 이젠 그 경험에서 제가 빠져야 이야기가 특별해진다는 걸 안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경험을 소재로 가져오되 보여지는 사건 너머를 말하려고 한다. 왕따 역시 괴롭힘이 아닌, 집단 속 가장 외로운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유쾌한 왕따’의 2부는 개인과 집단의 이야기로 확장됐다.”

웹툰의 영상화가 잇따르는 요즘이지만, ‘유쾌한 왕따’처럼 하나의 IP(지식재산권)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상을 여럿 탄생시킨 사례는 드물다. 작가에게 웹툰과 IP의 관계를 묻자,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영화 덕을 본 작가여서 이상하게 들릴 순 있지만, 웹툰이 다른 콘텐츠의 원천 IP 역할을 하는 건 부수적이다. 웹툰 자체로서 성공적인 작품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는 “웹툰 이용자가 국내 시장에선 포화 상태다. 글로벌에서 통하는 웹툰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했다. 차기작인 요괴를 소재로 한 동양 판타지물은 이런 고민에서 작업하고 있다. 내년 초 공개 예정이다.

‘김숭늉’은 데뷔 초기 스스로 따뜻한 만화를 그릴 것으로 생각하고 지은 필명이다. 실제론 정반대의 길을 걸은 작가는 만화를 ‘사이좋게 지내려고 신경 쓰는 친구’에 비유했다. “회사를 잠깐 다니다가 ‘한 달에 100만원만 벌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웹툰을 시작했다. 웹툰이 돈이 안 될 때여서 투잡을 뛰었다. 이젠 그림만 그릴 수 있어 행복하지만, 종종 만화와 사이가 나빠진다. 독자 피드백이 바로 오는 웹툰 특성상 많은 작가가 힘들어 한다.” 최근 스토리를 맡아 완결한 ‘사형소년’(글로벌 조회수 1억5000만) 작업이 전환점이 됐다. 연쇄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도 괴물이 되는 소년의 이야기. “첫 액션을 시도하며 많은 걸 배웠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캐릭터는 ‘클리셰덩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재밌게 보여주는 일이 어렵더라. 이젠 평범한 사람이 방황하는 이야기 대신, 올곧은 캐릭터를 시도하고 싶다.”

작가는 최근 ‘유쾌한 왕따’의 영상화 작업을 맞아, 원작의 뉘앙스를 고쳐 다시 연재하고 있다. 폭력의 대안이라고 믿었던 사회조차 타락했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산으로 도피하는 작품 후반부가 대표적. “원작에선 주인공이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해’라고 말한다. 이를 ‘어른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해’로 쓸지, 그대로 갈지 고민 중이다. 후자는 다음 세대는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 연재할 때는 염세적이었지만, 지금은 괴물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세대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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