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집·죽음… 코로나 대신 ‘현실의 그늘’ 짙어져
코로나의 그늘이 지나자, 현실의 문제는 더욱 첨예해졌다. 올해 신춘문예 시·소설 부문 응모작들은 개인의 내면과 주변 이야기에 침잠했던 예년과 달리, 현실적 문제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품은 작품이 많았다. 결혼·출산·부동산을 비롯한 청년층의 문제부터 간병·죽음 같은 노년층의 고민까지 다양한 주제가 관찰됐다.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8개 부문 9538편의 응모작이 접수됐다. 4년 만에 최대치다. 시 6303편, 단편소설 811편, 시조 570편, 동시 1425편, 동화 276편, 희곡 97편, 문학평론 37편, 미술평론 19편으로 응모 편수가 대부분 늘어났다. 작년엔 8359편, 2020년 8848편을 비롯해 2019년(1만383편) 이후 응모작 수는 줄곧 8000편대에 머물렀다.
지난 8일 박준·서효인·유계영 시인이 시 부문 예심을, 소설가 박민정·서이제·임현과 문학평론가 박인성이 소설 부문 예심을 마쳤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방역 등 문제로 시와 소설 부문 예심을 따로 진행했지만, 올해는 함께 진행했다. 늘어난 응모작 수만큼 심사는 더욱 치열했다. 예심 결과 시 9명, 소설 10명의 작품이 본심에 진출했다.
시와 소설 부문 모두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관련 소재가 자취를 사실상 감췄다는 게 특징. 임현 소설가는 “팬데믹으로부터 회복되는 생활과 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응모작들이 많았다”고 했다. 유계영 시인은 “작년과 달리 고립되고 축소된 개인의 삶, 마스크 등 코로나 관련 소재를 채택한 시가 올해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다만 “미래에 대한 시적 예감과 개성적인 관측이 활발히 상상되기보다는 ‘지금-여기’의 무력함을 관조 중인 고요한 시선들이 두드러졌다. 오늘을 감각하는 가장 첨예한 목소리로서의 시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각 세대 사이에서 공유되는 문제의식이 직접적인 소재로 두드러졌다. 서이제 소설가는 “올해는 특히 질병과 간병을 소재로 다룬 작품, 노인이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청년 세대는 연애 불능, 결혼, 비혼, 출산, 육아, 부동산 취득 등 현실적 어려움을 소재화한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세대를 아우르는 형태의 사건이나 인물이 없어, 세대적 감수성이 양극화되는 경향이 보였다. 세대 갈등의 해결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 부문에서는 사회적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몸과 내면에 침잠하는 작품들이 다수 관찰됐다. 박준 시인은 “자아에 대한 자문과 자답은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반대로 타자를 감각하는 방식은 피상적이고 또 추상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내면과 외연이 고루 어우러진 작품들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고 했다. 서효인 시인은 “질병에 관한 시가 부쩍 늘어났다. 몸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통로를 활용해 세계를 만나려는 시도가 아닌가 싶다”며 “정신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가감 없이 그 아픔을 드러내고, 그 병증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시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질병을 비롯한 죽음의 문제는 소설 부문에서도 두드러진 경향. 박민정 소설가는 “올해 응모작에는 자연사, 사고, 자살 등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많았다. 사회 전체에 불안감이 팽배한 탓으로 보인다”며 “죽음이라는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가볍게 쓰는 경향도 있었다”고 했다.
시·소설을 제외한 다른 부문은 예심 없이 본심을 치른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고, 내년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당선작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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