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당이 그리 만만한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9일 소셜미디어에 “제 이름은 전국 유람을 하다가 (공천 예상 지역이) 오늘 ‘분당을’까지 갔네요. 거의 유체 이탈 수준^^”이라며 “중기부 퇴사 이후 진정한 합체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최근 개각으로 후임 임명 절차를 앞두고 있는 이 장관은 내년 총선 출마를 밝힌 상태다.
이 장관은 10일에는 “홍준표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다. 공천 과정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짧은 레슨을 받았다ㅎㅎㅎ”라며 “서초을을 갈지 분당을을 갈지 뭐 또 다른 을을 갈지 모르겠지만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썼다. 일각에서 “현직 장관이 한가하게 지역구 쇼핑할 때냐”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벤처기업인 출신 이 장관은 선출직 경험이 없다. 2020년 4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위성 정당(미래한국당)에서 비례대표를 받아 21대 국회의원이 된 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에서 중기부 장관에 임명됐다.
총선이 넉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지역 선거 경험도 없는 이 장관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당 강세 지역구를 출마지로 거론하는 모습에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례대표와 임명직 장관으로 정권에서 수혜만 입고 또다시 꽃길만 가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 경기 분당을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까지 출마를 희망하며 현재 여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구 중 하나다.
분당은 서울 강남과 인접해 한때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렸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지역구인 분당갑은 2000년 이후 7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6번 승리했고, 분당을도 4번 승리했다. 하지만 분당을은 2011년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당선됐고 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2016년부터 내리 재선하고 있는 곳이다. 국민의힘에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들면 망한다”는 소리가 있다. 오만하면 진다는 것이다. 공직을 맡은 지 4년이 채 안 된 이 장관이 서초에서 분당으로 ‘지역구 쇼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분당 주민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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