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정치의 퍼스트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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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004년 2월 3일 밤 기자는 출입처 기자실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두 달 뒤 당초 50석도 어렵다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확보해 최악을 면했다.
불확실하고 위험하지만 일단 도전한다는 의미의 '퍼스트 펭귄'은 자기 희생의 선구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장 의원의 희생에 비윤을 포함한 다른 중진, 함량 미달 초선들이 뒤따를지 아니면 숨어 버릴지 진짜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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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004년 2월 3일 밤 기자는 출입처 기자실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부산에서 정가 소식통으로 알려진 지인이었다. “김진재 의원이 내일 정계 은퇴를 선언한답니다.” 그때까지 금정구에서 5선을 지낸 김 의원의 거취를 놓고 아무 예고가 없었는데, 마침 봇물처럼 터지던 불출마 대열에 그도 결국 합류한 것이다. 정치면에 급히 기사를 끼워 넣었다. 당시 한나라당에는 대선자금 차떼기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리수 등으로 군소 정당 전락 위기감이 팽배했다. 대대적인 물갈이론이 확산했고 그 결과 6선 박관용, 4선 유흥수, 재선 정문화 의원 등 영남 중진 14명을 포함해 27명이 불출마했다. 두 달 뒤 당초 50석도 어렵다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확보해 최악을 면했다.
펭귄은 바다에 들어가야 먹이를 구한다. 하지만 바다엔 포식자들이 우글거린다. 다들 주춤거리는 사이 먼저 뛰어드는 누군가가 있다. ‘퍼스트 펭귄’이다. 이런 일은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벌어진다. 누 떼는 물과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 넓은 강을 건너야 한다. 물 속엔 악어떼가, 건너편엔 사자가 어슬렁거린다. 이때 우두머리가 필사적으로 치고 나가고 나머지가 뒤를 따르는데 그 장면이 장관이다. 불확실하고 위험하지만 일단 도전한다는 의미의 ‘퍼스트 펭귄’은 자기 희생의 선구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윤핵관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장 의원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뒤편에서 국민의힘 총선 승리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당 혁신위원회가 1~6호 안건을 최고위원회에 보고하고 조기 해산한 지 하루 만이다. 인요한 혁신위는 ‘지도부·중진·친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 결단 등을 촉구해왔다. 원조 윤핵관 3인방(김기현 권성동 장제원) 중 처음이다. 장 의원으로선 지난해 8월과 지난 2월 임명직 당직 거부에 이어 세번째 백의종군 선언이다.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 않겠다는 것만큼 큰 결단은 없다. 총선 포기 후 밀려드는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기자회견 말미에 “이제 떠난다. 버려짐이 아니라 뿌려짐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든 장 의원이 탈진해 쓰러질지 뜻밖의 고기 떼를 만날지는 미지수다. 4년 뒤 정치 지형은 아무도 모른다. 노무현은 모든 걸 내려 놓았기에 더 큰 걸 얻었다. 장 의원의 희생에 비윤을 포함한 다른 중진, 함량 미달 초선들이 뒤따를지 아니면 숨어 버릴지 진짜 두고 볼 일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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