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톨스토이가 한숨 속에 내뱉은 관전평은 간단치 않다. 간결하면서도 아리송하다. 날카로운 시선과 고집이 엉켜있는 듯한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한다. 행복한 가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불행한 가정은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갈라져 시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조와 긍정으로 넘어가려는 태도가 혼합된 말이다.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는 직설적인 원인이다. 주로 외부의 요인에 기인한다.
전자는 극복의 의지이고 후자는 핑계다.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마음을 돌린다는 불구(不拘)는 다소 자기중심적 낭만일 수 있다. 하지만 차가운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렇기 때문에’ 보다는 뜨거운 숙명을 담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강하고 단정적인 의도를 더하여 삶을 긍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근 2년 가까이 붓을 들지 못한 채 육신의 반란과 대치 중이다. 오늘은 가슴에 달고 온 심장박동기를 반납하러 또 병원에 가야 한다.’
경기도 김포에서 화가로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기의 근황이다.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무지개를 사로잡는 소녀였으면 좋겠다. 육신의 반란과 마음의 쇠락은 비례하지 않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 말을 듣는다고 낭패감이 쉬 가시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여전히 삶에 대한 희망의 담쟁이 잎이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면, 막막할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으니 희망이다. 많은 것이 흔들리고 삶이 흐트러진다 해도 성장과 회복이 있을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본질은 회심이다.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다. 한국인의 푸르른 정한(情恨)이 담겨있는 회심곡(回心曲)에 삶의 또 다른 실마리가 있다. 유보 없는 긍정과 성숙의 염원을 담고 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어마라 / 동상 석 달 죽었다가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 우리 인생 한번 가면 어느 시절 다시 오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마땅히 기댈 말은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나이듦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대상이다. 가능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날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겨울과 봄 사계절이 있는 까닭이며,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유다.
성급한 마음은 이미 입춘을 기다린다. 봄으로 접어든다는 입춘은 양력으로 2월 4일이나 5일께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그리 멀지 않다. 가을이 오는 입추도 한여름을 조금 지난 8월 7일이나 8일께다. 봄의 기운은 따뜻할 때가 아니라 추울 때 와있고, 가을의 기운 역시 서늘할 때가 아니라 한창 더울 때 이미 우리 곁에 도착해 있다. 24절기가 주는 지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한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미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신기루 같은 사랑을 꿈꾸며 신실(信實)한 남편 브론스키와도 헤어진 안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름다운 외모와 교양을 갖춘 사교계의 꽃 안나 카레니나, 그녀의 부질없는 로망은 불행을 만들어버렸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 생활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처럼 극적이고 강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고 있다. 티격태격 소소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우린 지금 여기에서 봄을 기다리는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여전히 행복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발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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