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성냥팔이

최아휘 아휘의 부엌 오너셰프 2023. 12. 13. 0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느덧 올해의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리고 불행한 소녀가 추위 속 맨발로 성냥을 판다.

팔리지 않는 성냥개비를 켤 때마다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하다 결국 성냥불처럼 소녀의 온기도 소멸한다는 바로 그 이야기의 배경이 12월이다.

내가 산타를 가장한 부모님께 동생들과 처음 받은 선물은 종합 과자 선물 세트였고,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은 통기타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아휘 아휘의 부엌 오너셰프

어느덧 올해의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쉬움과 두려움, 다행스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이 채 해소되지 못하고 남아 내년을 기약한다.

연말이 다가오면 항상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릴 때 읽었던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다. 어리고 불행한 소녀가 추위 속 맨발로 성냥을 판다. 팔리지 않는 성냥개비를 켤 때마다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하다 결국 성냥불처럼 소녀의 온기도 소멸한다는 바로 그 이야기의 배경이 12월이다. 게다가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이후의 크리스마스에 난 늘 정신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거나 혼자 조용히 보내곤 했던 것 같다. 그 나이 때 젊음들이 대개 연인과 함께 보내는 그 행복한 날에도 내게는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주방 일은 참 고되다. 특히나 이태원 시절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매년 힘들었다.

홀의 손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행복한 미소로 우아하게 식사와 와인을 들고 있지만 주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은 완전 다른 세상이 된다. 7명 정도 되는 요리사들은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 가운데 선 것처럼 사력을 다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예약은 일찌감치 다 차버렸고 미리 준비했음에도 쉴 새 없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주문서는 감당하기가 벅차다. 수셰프가 주문서들을 읽을 때부터 정신을 집중해서 전부 외워야 한다. 자기 파트의 요리들이 밀리지 않기 위해 신속 정확한 손놀림을 쉼 없이 이어가야 한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제때 제대로 안 나오면 어김없이 셰프가 정신 차리라고 잡아먹을 듯 소리친다. 살벌하다. 서비스 타임 내내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실수를 줄이려면 침착해야 한다.

총괄 셰프 프랭크는 힐튼 호텔에서 왔다던 한국인 수셰프에게 스테이크용 팬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역시나 같은 프랑스 국적이었던 셰프 잭과 수셰프 니콜라 등도 이 전쟁터에서는 가차 없는 성격들이었다. 모든 소스와 요리, 디저트는 수제로 만들었고 3일에 한 번씩 바꿀 때가 많아 기민하지 않으면 따라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녹초가 되어 덜컹거리는 막차를 타면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 하다가 기절하곤 했다. 그걸 잘 버텨내면 남들보다 손이 빨라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배움의 장점도 컸다. 그때 접한 수백 가지 요리들과 습관들이 이제는 내게도 좋은 경험으로 남았고 고생들은 추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기억한다. 전쟁터에서 잠시 주방 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을 가면서 본 홀 안 외국인 손님들과 젊은 연인들의 웃음소리, 미소,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아직도 내 눈앞에 선하다. 지저분해진 내 조리복, 앞치마와 대조적인 우아한 차림새의 연인과 가족들. 그들이 마주하며 연신 입과 눈을 통해 크리스마스와 연말, 신년의 기대감, 설렘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 짧은 순간이 내 머릿속에서 영원처럼 길게 각인되며 속으로 말했다.

‘나도…저들 속에 있고 싶다.’ 그 순간 내가 가진 성냥불 하나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어린 시절. 가만 생각해 보니 가족과 따뜻하고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를 보낸 기억들이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함께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설레고 행복했던 그날들이….

외갓집에서는 외삼촌을 따라 집 앞산에서 나무를 베어 가져와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장식했었다.


내가 산타를 가장한 부모님께 동생들과 처음 받은 선물은 종합 과자 선물 세트였고,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은 통기타였다. 그날 밤 캐럴을 들으며 케이크에 초를 켜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행복해하던 그 순간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렇게 또다시 성냥개비의 불이 사그라들어간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남은 성냥 모두를 태워서라도 계속 보고 싶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