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출판인 윤형두와 문고본 전성시대

김태훈 논설위원 2023. 12.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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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추구하던 1970년대
지식을 향한 욕구도 폭발해
지식 대중화에 나선 출판인들
문고본으로 그 요구에 부응해
문고본은 헌책방에서도 인기있는 도서였다./조선DB

지난주 출판사 범우사 윤형두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10여 년 전 서울 인사동 모임에서 그와 동석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자리엔 윤 회장과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전병석 문예출판사 대표, 수필가 피천득 선생 등이 참석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1970~80년대 문고본 전성시대를 일군 주인공들이었다. 을유문고, 범우문고, 문예문고가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특히 윤 회장이 펴낸 피천득의 ‘수필’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큰 사랑을 받으며 문고본 붐에 불을 댕겼다. 윤 회장은 재작년 모교가 마련한 대담에서 범우사를 대표하는 책이 무엇이냐는 대학 후배들의 질문을 받고 “피천득 선생의 ‘수필’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로 시작한 범우문고”를 꼽았을 만큼 평생의 긍지로 삼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1970~80년대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욕구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풍요에 대한 갈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식에 대한 욕구도 그 못지않게 뜨거웠다. 그 열기를 타고 한국 출판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장됐다. 1960년 고작 1600종이었던 신간은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던 1970년 2600종으로 늘더니 1990년 4만1000종을 넘어섰다. 발행 부수 증가는 더욱 극적이어서 1970년 480만부였던 것이 1990년엔 2억4000만부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발간된 책이 7290만부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세기 전 이 나라는 실로 독서 열기로 펄펄 끓던 나라였다.

드라마 같다고도 해야 할 독서 바람을 맨 앞에서 이끈 게 문고본이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쌌고 요즘 스마트폰처럼 주머니에 쏙 들어가 휴대하기 좋았다. 1970년대 인기 문고 중 하나였던 삼중당문고 한 권 값은 150~250원이었다. 자장면 한 그릇 값만 내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었다. 당시 학생 신상 기록 카드 취미란에 가장 많이 적힌 것이 ‘독서’였다. 장거리 여행 떠나는 이들이 버스 안에서 읽기 위해 집어든 것도 문고본이었다. 윤 회장은 “경부고속도로가 뚫린 덕에 더 많이 팔렸다”고 술회했다. 신문엔 수백권에 이르는 문고본 리스트를 실은 광고가 연일 실렸다. 해마다 200만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 문고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장정일 시인은 시 ‘삼중당 문고’에서 당시 문고본 열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열다섯살, 하면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은’ 책,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었고, ‘개미가 사과 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듯 음미했으며, ‘간행 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해가며 독파했고 ‘방학 중에 쌓아 놓고’ 읽었다. 필자도 고교 시절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교재를 제쳐두고 책에 빠져들곤 했다. 한 번은 문고본 ‘논어’를 읽다가 담임 선생님께 들킨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빙긋이 웃더니 “다 읽으면 나도 빌려줄래?”라는 말로 자습 시간 딴짓을 눈감아 주셨다.

1990년대 이후 문고본 열풍은 많이 사그라졌다. 소득이 늘면서 고급화를 지향하는 시대 정서와 맞지 않게 됐고 독서 인구를 스마트폰에 빼앗긴 것도 큰 이유다. 그렇다 해도 당시 출판인들의 열정은 빛바랜 역사일 수 없다. 지금도 범우문고를 비롯해 책세상문고, 살림지식총서, 시공 디스커버리총서, 민음 쏜살문고 등이 1만원 안팎의 저렴하고도 내용 충실한 문고본을 낸다. 문고본은 우리가 무지와 가난을 딛고 떨쳐 일어나던 시기, 지식 대중화 기치를 높이 들었던 출판인들의 사명감이 빚어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출판인 윤형두의 생애가 그 숭고했던 열정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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