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30> 눈 밟고 산중의 은자 찾아간 중국 청나라 시인 조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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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밟고 산중에 사는 은자 찾아갔더니(踏雪防山樵·답설방산초)/ 은자께서는 눈을 밟고 나가셨네.
은자를 찾아 눈을 푹푹 밟으며 산길을 올라가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밖으로 나간 발자국이 눈 위에 남아 있다.
그리하여 시인이 은자를 찾아가는 그 길은 눈이 쌓인 단순한 길이 아니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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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밟고 산중에 사는 은자 찾아갔더니(踏雪防山樵·답설방산초)/ 은자께서는 눈을 밟고 나가셨네.(山樵踏雪去·산초답설거)/ 눈 위에 남겨진 짚신 자국 따라(一路草鞋痕·일로초혜흔)/ 소나무 우거진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네.(尋入松深處·심입송심처)
위 시는 중국 청나라 조관효(趙關曉·1670~1723)의 ‘눈길을 밟으며(踏雪·답설)’로, 그의 시집인 ‘주무집(蛛務集)’에 들어 있다. 그의 자(字)는 개하(開夏), 호는 감하(嵁下)·낙촌(樂村)으로, 절강성 귀안(歸安) 출신이다. 그는 청나라 전기(傳奇)인 ‘앵무몽기(鸚鵡夢記)’의 저자이기도 하다.
‘山樵(산초)’는 ‘산 나무꾼’ ‘산사람’ ‘산에 사는 은자’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산중의 은자(隱者)로 해석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수묵화 한 폭이 연상되는 시이다.
은자를 찾아 눈을 푹푹 밟으며 산길을 올라가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힘들게 눈길을 밟으며 찾아갔는데 공교롭게도 은자는 집에 안 계신다. 밖으로 나간 발자국이 눈 위에 남아 있다. 어디론가 나가셨다. 시인은 눈 위에 남겨진 그 분의 짚신 자국을 따라 걷는다. 은자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정신을 배울 것 같다. 가다 보니 소나무 숲 깊은 곳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발자국을 따라간 시인은 은자를 만났을까? 하지만 위 시에서는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그렇듯이 은자를 만나고 안 만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더 소중한 것이다.
필자는 젊어서부터 산을 즐겨 찾아, 겨울 산도 많이 걸었다. 특히 백두대간과 지리산을 타며 허리춤까지 푹푹 빠지는 산길을 많이 걸었다. 그리하여 시인이 은자를 찾아가는 그 길은 눈이 쌓인 단순한 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은자가 계신 그곳으로 다가가는 그 자체가 공부다. 여기서 공부는 책을 갖고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수준을 올리는 마음공부, 즉 정신적 수양이다. 아무리 꼿꼿한 사람도 혼자일 경우 나태해질 수 있다. 주위 누군가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서 자신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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