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53] 쿠데타와 제로 금리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영화처럼 1979년 한국의 쿠데타는 성공했다.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1923년 독일 쿠데타는 오합지졸이 모여 우왕좌왕하다가 싱겁게 끝났다. 그때 아돌프 히틀러가 체포되었다.
변변한 직업이 없어 연금으로 생활하던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 입대했다. 그러고 패전 후 정보 부대 하사관으로 진급했다. 그의 임무는 불온 단체를 색출하는 것이었다. 1919년 9월 어느 모임에 참석해서 염탐하는데, 그날 강사는 나치당원 고트프리트 페더였다. 페더는 청중에게 ‘이자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는 법’이라는 책을 뿌렸다. 유대인들이 장악한 독일 금융계를 전복하는 것이 독일이 번영하는 길이라면서 이자 철폐를 주장하고 있었다.
책을 훑어본 히틀러는 무릎을 쳤다. 반체제 단체를 색출하려다가 오히려 포섭된 것이다. 곧바로 군복을 벗고 입당했다. 타고난 대중 연설 능력에 힘입어 1년 뒤 당 선전부장이 되었다. 다시 1년 뒤인 1921년 7월에는 당대표까지 밀쳐내고 당권을 잡았다.
1922년 10월 이탈리아에서 무혈 쿠데타가 벌어졌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군인들이 검은 와이셔츠만 입은 채 로마로 행진하자, 무력한 이탈리아 정부가 지레 질겁해 스스로 해산했다. 히틀러가 거기서 큰 영감을 얻었다. 군소 정당을 규합해서 뮌헨에서 베를린까지 군중 행진을 계획했다. 반외세, 반유대 구호를 내건 쿠데타였다.
1923년 11월 8일 히틀러가 뮌헨의 군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그 자리에 서도록 만든 것은, 4년 전 페더에게 배운 이자 철폐론이다. 유대인 자본가를 몰아내려고 등장한 그 이론이 한참 뒤 현실이 되었다. 놀랍게도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실행한 것이다. 2008년 12월 16일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사상 최초로 금리 목표를 0%로 낮췄다. 역시 유대계인 재닛 옐런 후임 의장은 그 제로 금리를 2015년 말까지 고수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