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백 함정취재, 계속되는 언론윤리 논란
서울의소리, 숨겨진 사실 드러내는 걸 넘어 사건을 창조해 문제?
언론계 의견 분분…주요 함정취재 사례와 관련 판례 찾아보니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서울의소리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이 언론 취재윤리 문제로 번지고 있다. 김 여사에게 선물을 주고 이를 문제삼은 것이 정당한 취재방법인지, 수수를 유도한 공작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소리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9월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선물한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최 목사는 카메라가 달린 손목시계를 착용해 관련 장면을 촬영했으며, 시계와 파우치는 서울의소리가 준비한 것이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지난달 2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서울의소리 보도가 언론윤리에 반하며, 비위행위가 있다는 것이 전제된 일반적인 함정취재와는 결을 달리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마약구매자를 가장하는 경우나 몰카 기법을 동원하는 경우는 모두 수사나 취재 이전에, '마약판매·비위행위'가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며 “김건희 여사 건은 이미 있었던 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만드는 방법이다. 하나는 접근이지만, 하나는 공작”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독수독과론'을 언급하며 “취재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역시 지난 8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취재방법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반적인 함정취재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몰래 취재한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건 함정이나 작전을 벌여놓고 취재 대상한테 뭔가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기자들이 사용하는 위장취재·기만취재하고는 좀 다르다”고 했다. 심 교수는 “범죄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제의해서 범죄를 하게 만드는 건 일반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다. 그것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디어오늘에 “서울의 소리 함정취재는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이며, 정당한 취재라고 볼 수 없다”며 “고도의 공익적 필요성, 함정 또는 위장 취재의 불가피성이나 예외성도 인정하기 어렵다.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는 공적 사안에 해당한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문제적 취재 영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뉴스 가치, 보도 비중, 화면 선택, 전달 방식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다”며 “이때 언론사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저널리즘적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8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취재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게 맞다”면서 “(김건희 여사는) 대표적인 공인이고 권력의 중심부에 계신 분이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되고 그게 훨씬 더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또 “'독수독과'가 이론이지 법이 아니듯 저널리즘 윤리도 이론이지 법이 아니다”라며 “저널리즘 윤리는 사안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공익과 과정의 정당성 사이에서 비교해 봐야 되는 문제”라고 했다. 정 교수는 기자들이 함정취재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례들을 누적시키기 위한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취재 윤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면서 “다만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건희 여사가 고가의 선물을 덜컥 받는 건 심각한 문제다. (영부인에 대한 정보는) 취재할 수 있는 길이 기본적으로 차단돼있는데, 불가피하게 이런 식으로라도 알리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영부인에 대한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함정취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사건 창조보단 '숨겨진 사실' 밝혀낸 함정취재
함정취재의 사례는 다양하다. 대부분은 언론사가 사건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불법·비윤리적 행위를 밝히기 위해 사건 관계자로 위장한 사례다. 뉴스타파의 '체리방송 협찬금' 보도, 한겨레21의 '기사형 광고' 보도가 있다. 뉴스타파는 경제 케이블방송의 협찬보도 문제를 알리기 위해 체리판매업자로 위장해 방송 제작을 의뢰했다. 방송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었지만 SBS Biz는 협찬금을 받은 후 방송을 내보냈고,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한겨레21 기자는 언론 홍보대행사에 돈을 주면 언론에 기사가 실리는 것을 알기 위해 직접 기사를 내기도 했다. 비윤리적 행위가 음성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언론사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다.
TV조선의 최순실 의상실 CCTV 역시 함정취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보도를 주도한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가 지난해 2월 공개한 당시 상황을 보면, 이 대표는 2014년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후 고영태에게 의상실 내부 CCTV 설치를 주문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CCTV는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증거가 됐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제보자X에게 접촉해 유시민 전 장관 등의 문제를 파악하려 했던 것도 함정취재 시도로 보는 시각(박원경 SBS 기자)도 있다.
해외의 경우 함정취재가 활발히 이뤄진다.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은 런던 올림픽 입장권을 암거래한 것이 적발돼 2012년 5월 해고됐다. 암거래는 BBC 기자의 함정취재로 발각됐다. BBC 기자는 올림픽위원회 관계자의 암거래 의혹을 들은 후 직접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표 구매를 시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 탐사보도팀은 2016년 샘 앨러다이스 영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브로커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아시아 국가 에이전트 회사 대리인으로 위장해 접근했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불법적 선수 이적 방법을 소개했고, 결국 경질됐다.
또 영국 텔레그래프와 채널4는 영국 하원의원들이 외국 기업에 로비활동을 대가로 금전을 요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 함정취재에 나섰다. 취재진은 중국 기업인으로 위장해 하원의원들에게 접근했고, 의원들은 취재진에게 활동비를 요구했다.
칠레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외교관 A씨는 2016년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파면됐다. A씨가 칠레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확보한 칠레 현지 언론사가 다른 여성을 접근시켰다. 광주지방법원은 2017년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일부 범행은 방송사에 의해 의도된 점'을 참작 사유로 꼽았다.
언론사가 사건을 창조한 경우도 있다. JTBC의 정유라 체포 보도가 대표적이다. JTBC 기자는 덴마크 올보르시 외곽의 주택에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딸 정유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현지 경찰에 신고, 이 과정을 기사화했다. JTBC 측은 △정유라 측 보디가드의 물리적 위협 가능성 △정유라 도주 가능성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으며, 국민 알권리를 위해 이 과정을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JTBC가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해외 함정취재 판례는
서울의소리처럼 의도적으로 상황을 연출한 함정취재 관련 판례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63년 잡지 라이프사 기자들은 상이용사가 가짜 약을 판매하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카메라·녹음기를 소지한 채 접근했다. 이후 상이용사는 체포됐다. 상이용사는 기자들이 주거침입·사생활 침해를 저질렀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대법원은 1000달러의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미국 ABC방송은 1994년 한 의학 연구소가 의학검사 결과를 잘못 판독한다는 제보를 입수한 후 해당 연구소에 위장 취업해 보도했다. 연구소는 ABC방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연방 항소 법원은 공익이 개인정보 보호 문제보다 중요하다는 이유로 개인정보 보호·무단침입 주장을 기각했다. 또 ABC방송은 1995년 식품 체인점의 비위생적 운영 실태를 밝혀내기 위해 기자들을 일용직 직원으로 위장 취업시켰다. 기자들은 작업 현장을 촬영해 뉴스에 내보냈다. 식품 체인점은 ABC방송을 고소했으나, 항소법원은 단 2달러의 배상금을 인정했다. ABC방송이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것은 명백하지만 공익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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