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새 대법원장 1호 과제

채희창 2023. 12. 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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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을병의 단편소설 '육조지'(1974년)에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도 재판 지연이 경찰의 구타만큼 고통스러웠다는 풍자다.

변호사업계에선 "판사들이 복잡하고, 어렵고, 민감한 사건 재판은 뒤로 미루고 쉬운 것만 처리하고 떠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법원장 후보추천제 폐지, 판사 증원, 재판장 임기(2년)를 늘리는 방안 등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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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을병의 단편소설 ‘육조지’(1974년)에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도 재판 지연이 경찰의 구타만큼 고통스러웠다는 풍자다. 경찰의 폭행은 사라졌지만, 판사의 ‘미뤄 조진다’는 말은 지금도 법조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재판 지연으로 법원마다 기막힌 사연이 넘쳐 난다. 뒤늦게 승소했지만 이미 회사가 문닫은 기업인, 배상금을 기다리다 판결 전에 사망한 고령의 원고 등등. 판결을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 6년 동안 재판 지연은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이 기간 전국 법원에서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은 ‘초장기 미제 사건’도 5배나 급증했다. 김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 개편 탓이 크다. 그는 ‘사법 민주화’를 명분으로 고법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승진 개념을 없애고 법원장도 ‘인기 투표’로 뽑자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가 사라졌다. 판사들 삶의 질은 좋아졌지만 국민의 고통은 더 커졌다.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민사소송법 1조에도 ‘법원은 소송 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소송법에는 심급별로 5개월 안에 선고하라고 돼 있지만 지킬 의무가 없는 훈시 규정일 뿐이다. 변호사업계에선 “판사들이 복잡하고, 어렵고, 민감한 사건 재판은 뒤로 미루고 쉬운 것만 처리하고 떠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재판 지연 해소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내세웠다. “법원장에게 최우선적으로 장기 미제 사건의 재판을 맡기겠다”고 했다. 위부터 솔선수범해 법원에 신속한 사건 처리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게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법원장 후보추천제 폐지, 판사 증원, 재판장 임기(2년)를 늘리는 방안 등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부디 국민의 고통을 줄여주는 법원이 되길 기대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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