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역대급 불수능, 무엇이 문제인가
진로교육 복원·대학 선발 자율 강화 등 시급
선한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선한 결말을 맺지 못한 사례가 교육 분야에 유독 많다. 대통령실에 의해서 촉발된 ‘수능 킬러 문항’ 논란은 끝이 좋지 못했던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고작 이런 결과를 보려고 교육부의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사임하게 만들었으며, 사교육 카르텔을 운운하며 세무조사까지 강행했던가? 정책적 준비도 없이 킬러문항을 갑자기 건드려서 결과적으로 피해만 봤다는 수험생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초고난도의 문항을 배제했다고 하지만 소위 ‘준킬러 문항’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역대급 불수능이 되고 말았다.
수능시험에는 일정한 유형과 요령이 있다. 고3학생보다는 유형에 익숙한 N수생들이 유리하다. N수생을 겨냥한 사교육 시장은 현행 대입 체제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공정의 역습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수능이 보여주는 공정이란 무엇인가? 형식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재학생보다는 N수생이,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보다는 많이 받은 학생이,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없는 학생보다는 뒷받침되는 학생이, 농어촌에 사는 학생보다는 수도권에 사는 학생이 수능에 유리하다.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진로교육의 복원과 어른들의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펴낸 2020한국직업사전에는 직업명만 1만6891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은 어느 정도 될까? 의사와 법조인과 같이 남들이 알아주는 직종 몇 개군에 들어가기 위해 애써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도 그만두고 수능에 다시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이 시스템이 옳은 것일까? 끊임없는 비교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자학하게 만드는 이 의자놀이에서 어른들부터 벗어나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다양한 삶, 관점, 가치를 인정하는 어른들이 많아질 때 진로교육은 숨 쉴 수 있다.
둘째, 수능 40% 이상 선발을 하게 한 정부의 방침을 폐기해야 한다. 또한 수시 최저등급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대학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 대학에서는 대학전형의 유형에 맞추어 학생들의 중도탈락률, 학점, 학교생활, 취업 상황들을 다각도로 확인하고 있다. 여러 연구물을 종합해 보면, 수능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 내지는 의대 진학을 위하여 N수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대폭 보장하면 장담하는데 수능 비중은 자연스럽게 현재보다 약화될 것이다. 수능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확인하는 장치로 활용하면 된다. 변별력 문제는 전공과 연계한 본인이 들은 수능 또는 내신 과목을 기준으로 대학이나 학과에서 지원자격을 정하거나 가중치를 부여하면 된다.
셋째,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수험생이 95만명에 달하던 시대에 적용했던 대입의 틀과 문법을 30만∼40만명이 보는 시대에도 고수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발표한 2028 대입안은 내신과 수능의 상대평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고교학점제라든지 2022 개정교육과정의 방향과 맞지 않다. 공교육 정상화, 대입 자율화, 사교육 경감, 역량 중심의 교육 전환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시안은 낙제점이다. 교육과정에 맞추어 평가가 설계되어야 하는데, 수능이 곧 교육과정과 수업을 규정한다. 한마디로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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