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나와도 “한국 뜨는게 답”…진로선택 0%대인데 정부 ‘나몰라라’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12. 1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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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의대 졸업생 3300명 중
‘의사과학자’ 선택은 1%미만
미국선 1조원씩 투자해 키울때
한국은 체계적 지원체계도 없어
연구자들 너도나도 탈출 러시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의과학자 육성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나라 보건복지 분야의 R&D(연구개발) 역량이 민낯을 드러내면서다. 그동안 선진화된 의료체계와 탄탄한 기술력, 성장 잠재력 등을 자신하던 K바이오는 정작 감염병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백신과 치료제 모두 적시에 내놓지 못했다. 그에 반해 미국, 영국 등에선 수십년간 연구를 이어온 의과학자들이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경구 치료제와 같은 결과물을 단숨에 내놓으며 바이오 분야의 국가 간 격차를 벌렸다.

전문가들은 K바이오의 한계로 의과학자의 부재를 꼽는다. 12일 한국보건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의 연간 졸업생 3300여명 가운데 기초 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사람은 30명가량으로 1% 미만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미국은 매년 전체 의사 가운데 4%인 1000여명이 의과대학원 박사 과정(MD-PhD)에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배출된 인원만 1만4000명에 달한다. 일본의 의과학자 수도 5000명 수준으로 우리나라를 크게 웃돈다.

바이오 산업의 주역인 의과학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책이 미미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의과학자 양성프로그램(MSTP)을 운영하며 매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캐나다, 영국, 스위스 등도 정부 주도 양성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 등 민간 주도의 의과학자 육성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지원 규모, 추진 동력 등에서 다른 나라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같은 지적은 일선 연구현장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이종성 의원이 보건복지 R&D 예산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20·30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연 간담회에서 박주찬 서울대 의학연구원 박사는 “정부 지원책이 미미하다 보니 연구자들 사이에선 한국을 뜨는 게 답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며 “해외에 나가있는 지인들도 ‘열심히 해서 한국에 돌아가겠다’가 아니라 ‘너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의과학자인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남 교수는 임상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8년 ADC(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 기업인 에임드바이오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삼성서울병원]
에스오엔컴퍼니 소속 이민선 약학박사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해볼 만한 기반이 국내엔 아직 미흡하다”며 “연구중심 병원이 늘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봉수 고려대 개화프로테오스태시스 연구단 박사는 “최근 정부가 R&D 예산의 파이는 거의 그대로 두고 연구 과제 개수를 늘리겠다는 식의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행정업무만 던져주는 것”이라며 “직접 인건비 지원 등의 획기적인 육성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성과주의식 지원을 문제삼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진모 서울대 약대 석박통합과정생은 “코로나19 때 900억달러이상을 벌어들이면서 성공을 거둔 mRNA 백신 기술은 미국에서 1960년대부터 연구돼온 것인데 한때는 실패한 플랫폼으로 불리기도 했다”며 “바이오와 관련한 기초과학은 생명을 다루는 분야다 보니 무수히 많은 단계별 실험이 존재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당장의 실적보단 진행상황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의학 교육이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 집중돼있는 것도 의과학자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거론된다. 대부분의 의대 학부과정이 병원 실습을 돌며 국가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데 맞춰져있기 때문에 임상의학 교육과정(BME-GME)에서 박사후 연구과정(Post-Doc)으로 넘어가는 인력 자체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의사 자격을 취득한 후 의과학자로 진로를 바꾸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의사들이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환자 진료에 드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임상 현장을 벗어나려는 인력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의과학대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졸업생이 100명이상 나오지만 궁극적으로 의과학자로 안착하는 경우는 이들의 10%도 안된다”며 “의과학자로 진로를 정한 후에도 직업 불안정성과 연구기회 부족 등을 이유로 추가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 작업에 본격 착수한 정부가 의과학자 양성책도 함께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 않으면 임상의사만 늘어날 뿐 기초 의학은 여전히 방치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의약시장을 뒤흔든 비만 치료제와 코로나19 백신 모두 의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정부가 의과학자 양성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더 큰 감염병 위기가 왔을 때 그저 마스크에만 집착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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