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뇌 속 ‘편도체’는 안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기자 2023. 12. 1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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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모태 보수, 모태 진보<1>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으로 알려진 직후인 지난해 5월4일 워싱턴 연방대법원에 몰려온 임신중지권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전적으로 진보는 현재의 체제와 제도의 변화와 개혁, 보수는 현재 제도의 보전을 주로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지난해 미 대법원에서 임신중지권을 폐지하는 변화를 주도한 것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유시장 주장하면서 임신중지 자유는 반대하는 보수의 역설…진보와 보수를 생물학적으로 정의해본다면 해답은 ‘뇌’에 있어
다양한 연구 결과 보수 성향일수록 편도체 부피가 크고 더 많이 사용돼…편도체가 클수록 기성 체제 옹호하고 더 쉽게 혐오 반응
교감신경 활성화 통해 공포·불안을 주관하면서 생존 투쟁에 관여하는 편도체…확증편향이 보수주의자에 많은 것도 그 때문

정치적 신념 혹은 성향은 분열에 가까운 심각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된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조차 정치적 분열이 더 첨예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소셜플랫폼이나 알고리즘 등으로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술적 접근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실상 들여다보면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전적 의미로만 볼 때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보존함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며,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개혁하고 혁신함으로써 발전을 추구하는 가치관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가 전통인지 선을 그을 수도 없으며, 보수가 변화를 거부한다고 볼 수도 없다. 2022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에 관한 판결은 1973년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번복 판결로 미국에서는 이제 개별 주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를 금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과거에 내려진 대법원 판례를 이렇게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서,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려는 보수가 아니라 급진적인 개혁을 원하는 진보의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판결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내린 것이며 이는 보수주의가 취하는 임신중지 반대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다른 예를 경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보수가 지지하는 자유시장과 민영화, 기업·자본 친화적 입장은 전통적 가치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현재 진보 경제의 이념이 노동 가치설을 내세우고 지주에 비판적이었던 고전학파와 유사하며, 이러한 고전학파의 전통을 깨고 나타난 신고전학파의 철학이 현재의 보수적인 경제사상과 가깝다. 현재의 보수 경제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20세기 후반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정부 시절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이 등장했다. 이 2가지 사례만 보아도 보수와 진보가 변화를 거부하거나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선재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경제(자유시장 vs 사회복지), 교육(엘리트주의 vs 평준화), 국방(국가안보 vs 평화주의), 임신중지 허용(반대 vs 찬성), 동성애 및 동성혼(반대 vs 지지), 이민정책(폐쇄 vs 개방), 총기 소지(찬성 vs 반대), 과학기술(불신 vs 옹호), 종교(종교적 vs 무신론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는 각기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특정 사안에 관한 입장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주제에 걸쳐 나타나는 이러한 일관성은 놀라울 정도다. 서로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주제를 두고 입장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둘로 나뉘며, 각 진영 내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된다는 것은 두 이념 안에 내재된 궁극적인 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신념에 따라 사안별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 혹은 가치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외치는 ‘자유’가 보수 이념의 가치일까? 경제 영역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보수주의자들이 개인의 임신중지 자유나 성적인 취향의 자유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국에서 프로 초이스(pro-choice), 즉 임신중지할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다. 그리고 국가안보와 강한 군사력을 중시하는 태도나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성, 과학에 대한 불신, 종교적인 성향 등은 자유라는 가치를 옹호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우리나라 보수가 반공을 외치는 동시에 개신교적이며 친일, 친미 성향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안별로 진보의 입장을 살펴봐도 정확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과학기술에 우호적인 진보 진영 사람들은 왜 총기를 규제하자고 주장하며, 사회복지와 교육 평준화를 외치고, 임신중지나 동성결혼을 지지하는가? 현재 진보로 지칭되는 사상적 조류에는 공산주의를 포함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해방신학 등이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의 신조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만일 사회과학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면 항상 확실한 정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연과학의 관점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인간의 모든 인지 기능이 사실상 진화의 산물임을 고려할 때, 정치 성향 역시 ‘모태에서 타고나는’ 생물학적 속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전학자와 뇌신경과학자들은 이미 정치 성향에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데, 그 결과들을 종합하여 생물학적으로 보수와 진보 이념을 정의하는 것이 3번에 걸친 ‘모태 보수, 모태 진보’ 시리즈의 목표다.

진보와 보수 간 생물학적 특성의 차이를 실제로 측정한 최초의 연구들 중 주목할 만한 것들이 2007년 ‘네이처 신경과학’ 저널과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2007년 연구에서는 평상시와 다른, 즉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을 때 진보와 보수로 분류된 사람들의 뇌가 일으키는 반응이 실제로 뇌전도 측정 결과에서 차이를 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8년 연구에서는 근전도 및 피부전도 검사를 사용, 갑작스러운 소음이나 위협적인 시각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근육과 피부에서 측정되는 교감신경 반응이 여러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는데, 즉 보수적 입장인 사람들에게서 교감신경 활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교감신경 중추는 편도체라는 뇌 기관이므로,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도체의 크기나 활성을 실제로 비교측정한 연구들이 이어졌다. 먼저 2011년 연구에서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뇌 구조를 살펴본 결과, 진보적 성향이 강할수록 전측대상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큰 반면에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편도체의 회색질 부피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3년 연구에서는 위험이 동반된 의사결정 과제를 수행하는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 MRI(fMRI)로 검사한 결과 보수 성향이 강할수록 편도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2년에는 fMRI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사람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는데, 역시 편도체가 예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편도체는 공포 및 불안의 감정을 주관하며 생존 투쟁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우리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편도체로 전달되고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 신호는 시상하부를 통해 부신을 자극하여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은 그 유명한 싸움-도주 반응을 주관하는 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싸움-도주 반응이란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것을 준비하는 생리적 과정을 일컫는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숨이 가빠지며 심장은 쿵쾅거리고, 더 많은 포도당이 근육에 공급되며, 근육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수축되고, 동공은 확장되고 청각은 더 예민해져 위급한 상황을 잘 포착하게끔 도와주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소화기능은 정지되며, 침이 적게 나와 입속은 바싹 마르고, 필요 없는 물질을 방출하기 위해 대변이나 소변을 보고 싶어진다. 과거 죽음의 공포와 위협에 대처하고자 개발된 전략이지만, 현대인들은 각종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동일한 생리적 현상을 겪게 된다. 청중 앞에서의 발표나 공연, 중요한 면접 등을 앞두고 자꾸 물을 찾게 되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난 회 ‘똥과 두려움의 상관관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존을 위해 발달된 진화적 전략으로서의 공포는 결국 혐오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편도체와 교감신경이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 더 쉽게 혐오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실제로 2만5588명 미국인과 121개국 5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보면, 혐오 자극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보수정당 후보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이민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나 동성애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된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또한 혐오는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결합하여 경계 대상에 대한 재빠른 분류와 판단을 하게끔 만든다. 신속한 판단을 내릴 때는 자신의 생각을 반추하고 검토하는 행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다. 과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스트인 크리스 무니는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보 성향 사람들에 비하여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확증편향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더 자주,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실제로 입증한 연구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되었다. 연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장 활발히 공유된 5000개 기사를 통해 참과 거짓으로 구분된 20개 정치적 진술을 도출해낸 후, 미국인 1204명을 대상으로 각 진술을 참이라고 믿는 경향을 측정하여 여러 가지 변수와 함께 분석하는 통계 모델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수 성향 사람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에 따라 보수 진영 입장을 대변하는 거짓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사회과학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보수와 진보를 생물학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로서 편도체와 교감신경에 관해 살펴보았다. 미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기술이나 정책 혹은 외부 영역에 있는 사람들, 즉 이민자, 외국인,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경계심과 혐오, 그리고 확증편향은 교감신경 중추인 편도체에 의해 매개된다.

존 조스트, 마자린 바나지

그런데 편도체가 뇌 인지 과정에 미치는 또 다른 영향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2018년 ‘네이처 인간행동’ 저널에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편도체 크기가 클수록 ‘현 상태(status quo)’를 합리화하는, 즉 기성 체제가 정당하거나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경향은 실험 참가자가 현재 유리한 위치에 있느냐 불리한 위치에 있느냐와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생물학적 원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기성 체제와 현 상태를 옹호하는 심리를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뉴욕대 존 조스트 교수와 하버드대 마자린 바나지 교수에 의해 1994년 처음 제시되었고 이후 많은 연구로 뒷받침된 이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두에서 지적했듯 인간의 사회와 문화는 변동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보수가 정당화하고자 하는 기성 체제를 어떤 특정한 사회나 문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으며 보수가 항상 변화를 거부한다고는 볼 수 없단 점이다. 그렇다면 보수가 옹호하는 체제라는 것도 혹시 생물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모태 보수, 모태 진보’ 시리즈의 다음 두 글에서 찾아볼 것이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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