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퇴출’을 퇴출한 ‘전 지구 이행점검’ 초안…섬나라들 “사망진단서”

강한들 기자 2023. 12. 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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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8, 산유국 압력에 ‘노력·원전’ 등 후퇴한 용어로 대체
주요국 정부 “서명 안 할 것”…환경단체 “회담 실패” 반발
“기후정의 지켜달라” 당사국 총회 앞 인간띠 두아르테 코르데이루 포르투갈 환경장관(가운데)이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진행 중인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8)의 ‘전 지구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GST)’ 초안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빠졌다. 국제환경단체들은 ‘퇴행’이라며 반발했다.

UNFCCC는 11일(현지시간) 파리협정에 따른 사상 첫 전 지구 이행점검 결과 초안을 냈다.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지난 8일에 냈던 초안을 다시 손본 것으로 협상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전 지구 이행점검 결정문은 온실가스 감축, 글로벌 적응 목표(GGA) 등을 포괄한다.

COP28 전체를 아우르는 최종합의문은 사실상 GST 결정문의 요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니셔티브, 선언 등이 참여국의 자발적 실천에 기댄 것과 달리 결정문은 당사국의 구체적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

전문가와 국제기후환경단체들은 11일 초안이 앞서 지난 8일 나온 초안에서 크게 후퇴했다고 우려했다. 8일 초안에서는 ‘화석연료 퇴출’이라는 용어가 모든 선택지에 들어 있었다. 당사국들은 ‘과학에 따른 화석연료 퇴출’과 ‘저감조치 없는 화석연료 퇴출·2030년 내 화석연료 사용 정점 달성’ ‘에너지시스템 탄소중립을 위해 저감조치 없는 화석연료의 신속한 퇴출’ 등 선지를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11일 초안에서는 ‘화석연료 퇴출’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감축’으로 대체됐다. ‘과학에 따라 정의롭고 질서 있게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 모두를 감축해 2050년쯤 탄소중립에 도달’하자는 선택지와 ‘저탄소·무탄소 연료를 사용해 세기 중반쯤까지 넷 제로 배출 에너지 시스템을 향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자’는 선택지가 남았다.

지난 8일 초안에서는 저감조치 없는 석탄 사용을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75% 감축해야 한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경로를 인지해 2030년까지 석탄발전의 조속한 퇴출과 신규 석탄발전 허가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내용은 11일 초안에서는 ‘저감조치 없는 석탄을 조속히 감축하고, 신규 저감조치가 없는 석탄발전 허가는 제한한다’로 바뀌었다. 구체적 시점과 근거가 사라져서 해석의 여지가 넓어진 셈이다.

‘에너지 빈곤 대응, 정의로운 전환 대응에 쓰이지 않는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도 ‘낭비적 소비를 조장하거나, 에너지 빈곤·정의로운 전환과 관련 없는 비효율적 화석연료 보조금 퇴출’로 완화됐다.

화석연료 ‘퇴출’과 관련한 모든 선택지가 후퇴한 셈이다. 지난 9일 영국 일간 매체 가디언 보도를 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최근 회원국에 공문을 보내 “탄소배출이 아닌 화석연료 형태의 에너지를 목표로 하는 어떤 문구나 해법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12일 “UAE가 OPEC의 실질적 리더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을 문건에서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재생에너지·에너지효율과 관련해서도 지난 8일 초안은 2030년까지(기한)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1만1000GW(목표 용량)로 2022년 대비(기준점) 3배 늘리고, 연간 에너지 효율 개선율도 2배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11일 초안에는 기준점, 재생에너지 목표 용량, 에너지 효율 목표 개선율이 모두 빠진 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에너지 효율 개선율 2배’만 남았다.

‘청정 기술’ 부문에서는 지난 8일 초안 기준 당사국에 2030년까지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저탄소 수소 생산량 등 저·무탄소 기술의 상당한 규모 확대를 요구했다가, 11일 초안에서는 ‘2030년까지’라는 기한이 빠지고 원전이 예시로 포함됐다. ‘메탄 감축’ 부문에서도 “2030년까지 최소 30%, 2035년까지 40% 감축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아산화질소, 불소 계열 온실가스도 목표 연도와 감축률이 명시됐다가 모두 빠졌다.

초안이 공개되자 주요국 정부들은 반발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1일 세드릭 슈스터 군소 도서국가 연합(AOSIS) 의장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는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며 “사망 진단서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보웬 호주 기후변화부 장관은 호주,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구성된 ‘포괄 그룹’을 대표해 성명을 내고 “도서국가의 사망 진단서에 공동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포괄 그룹이 ‘저감조치가 없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들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카이사 코소넨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정책 코디네이터는 “겨우 이게 우리가 COP28을 통해 얻는 것이라면, 이 회담은 실패”라며 “과학과 일치한 행동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화석연료 퇴출은 더는 선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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