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지났는데…영화인·시민단체에 ‘조총련 접촉 경위’ 묻는 통일부
민간 교류·협력 위축 우려
통일부가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한 문화예술인의 수년 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접촉 경위까지 파악하는 것으로 12일 드러났다. 교류·협력을 지원하기보단 과도하게 위축·봉쇄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은 지난달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의 김지운 감독과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조은성 제작자에게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했다면 경위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두 영화는 각각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문제와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다뤘다.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도 지난달 통일부로부터 “조선학교 방문 등과 관련해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몽당연필 대표는 영화배우 권해효씨가 맡고 있다.
김 감독과 조 제작자에 대한 경위서 제출 요구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반국가단체 옹호 영화’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국비 지원을 문제 삼으며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두 영화가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 주민 사전접촉 승인을 받고 제작된 것이냐는 질의를 받자 통일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것이다. 몽당연필에 대해선 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선학교 측과의 교류 활동 내용을 파악해 요구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9월 일본에서 조총련 주최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통일부가 사전접촉 신고가 없었다고 문제 삼은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평가된다.
통일부의 조총련 접촉 경위 조사가 민간의 교류·협력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수년 전 접촉 여부까지 광범위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상황이 우려를 키운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차별>은 2017~2019년 촬영됐고, 2021년 개봉한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2016~2017년 주로 촬영됐다고 한다. 몽당연필은 2019년 교류 활동도 문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감독은 통화에서 “통일부가 굳이 지금 와서 경위서를 내라며 겁박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 제작자도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처럼 지원 배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남북 교류·협력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에서 억제 기조로 전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재일조선인 문제의 특수성 등을 간과하고 ‘반국가단체’라는 이념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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