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감기를 이겨내려면
12월 역대 최고 기온을 찍은 날씨가 곧 다시 긴 한파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상도가 무너진 가운데에도, 반갑지 않은 손님인 감기는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중국, 일본에서 감기를 뜻하는 한자어는 감모(感冒), 상풍(傷風), 풍사(風邪) 등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문 문헌에서는 감모나 상한(傷寒), 한질(寒疾) 등으로 표기된 예가 많다. 코에 불이 난다는 뜻의 순우리말 고뿔(곳블)도 일찍부터 쓰여왔다. 그런데 특정 시기부터 한문 문헌에 ‘감기(感氣)’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종 때 와서야 나오지만, <승정원일기>에는 인조 때 1회를 시작으로 숙종 때 10여회, 영조 때는 수백회나 사용되었다. 개인 문집에서도 17세기 서찰과 계문 등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점차 늘어났다. 언젠가부터 입말로 통용된 감기가 한문 문장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감기는 예로부터 흔한 병이었지만, 만병의 근원이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었다. 송나라 때 진사도라는 인물은 엄동설한에 아내가 건네준 솜옷을 입지 않고 야외에서 거행되는 국가 제사에 다녀왔다가 감기에 걸려 49세의 나이로 그만 죽고 말았다. 따뜻한 솜옷을 거부한 이유는 자신이 평소 탐욕스럽다고 비난하던 동서 조정지의 집에서 빌려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 융통성 없고 허무한 죽음이지만, 의로움을 지상의 가치로 추구한 선비들에게 미담으로 전해져왔다.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된 감기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는 “감기서(感氣序)”, 기가 허함을 느낀다는 “감기허(感氣虛)” 등의 표현에서 유추해봄 직도 하다. “감기는 약 먹으면 2주 가고 약 안 먹으면 보름 간다”는 우스갯말도 있다. 계절의 변화에 몸의 기운이 미처 적응하지 못해서 잠시 걸렸다가 지나가곤 하는 병이니 스스로 이겨내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만큼 따뜻한 손길이 그리울 때도 없다. 감기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 간혹 찾아오는 기복과 아픔에도 누군가의 돌보는 손길이 필요하다. 면역이 잠시 약해진 이는 없는지 곁을 살피고 따뜻한 손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겨울이기를 소망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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