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기후 악당들의 그린워싱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한국을 포함해 198개 나라가 참가했던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12일(현지시간) 끝났다. 쟁점이었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은 결국 합의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저개발국을 지원하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을 출범시킨 게 그나마 성과였다.
땅을 헤집어 원유를 뽑아내는 나라에서 지구를 지키겠다는 모임이 열렸으니 성과를 기대하는 게 무리였을 것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캐낼수록 지구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석탄은 에너지 단위당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더러운 연료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석탄 1t을 태울 때 이산화탄소 9.14t이 나온다. 석유는 연소할 때 7.33t, 천연가스는 3.62t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이들 화석연료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도 배출한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Our World In Data’를 보면 2022년 기준 화석연료 소비는 약 13만1494TWh(테라와트시)였다. 1850년만 해도 석유와 천연가스는 사용하지 않았고, 석탄만 소량 썼을 뿐이었다. 인류가 탄소 배출량을 급증시킨 것은 45억년 지구 역사 중 최근 2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중국과 미국은 압도적 1·2위 화석연료 국가로 전 세계 화석연료의 44%를 소비한다. 한국(8위)을 포함한 화석연료 상위 10개국의 소비 비중은 70.3%로 사실상 이들 나라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기후 악당’이다. 이번 COP28에 중국과 미국 정상은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은 화석연료 퇴출이 빠진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COP28이 기후 악당들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또는 친환경 위장술) 장으로 악용된 듯하다.
기후 악당은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다만 친환경적인 이미지나 광고 등으로 교묘하게 위장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포스코 계열 삼척블루파워는 명칭에 ‘블루’가 들어가 친환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석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이다.
“요즘 대부분 지자체는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고 있어요.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보다 친환경적인 설비로 바꾸는 거죠. 그런데 설비 교체가 실제 탄소저감 효과를 가져올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예요.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죠. 지자체가 그린워싱에 나서는 건 아닌가 싶어요.”
지방 환경공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의 푸념이다. 6개 광역·특별시는 각각 환경공기업을 운영하는데, 이사장이 환경 전문가인 곳은 없다. 대부분 토목 전문가 또는 전직 공무원이다. 그나마 부산·인천·광주는 환경공단 명칭을 갖고 있고, 서울·대구·대전은 시설관리공단의 한 부서에서 환경업무를 담당한다. 이들 공기업이 겉으로는 ‘환경’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토건’에 치중해 탄소 배출을 늘리는 기후 악당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지자체들은 끊임없이 파헤치고, 갈아엎고, 세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이유를 찾아보자. 배정된 예산을 집행해야만 다음해 예산이 줄지 않는다는 해명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토목·건축 공사를 해야만 뭔가 달라진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기자의 집 주변에는 조그만 호수를 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하루가 멀다하고 공사를 벌인다. 몇년 전에는 서울시청사를 연상케 하는 해괴한 형태의 식물원을 건립했다. 꽃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만개했던 너른 꽃밭은 반려동물과 사람이 휴식하는 둔덕으로 바뀌었다. 불도저로 꽃밭을 갈아엎어 만들었다. 올해는 호수 주변에 1980년대 나이트클럽 분위기를 풍기는 새파란 조명을 설치했다. 수년간 동원된 중장비와 시멘트, 벽돌, 철근, 조명 등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량은 얼마나 될까. 그대로 뒀더라면 ‘제로’였을 것이다.
독일 메르카토르 기후변화연구소(MCC)의 기후위기시계를 보면 12일 기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1850~1900년) 이전보다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5년7개월9일뿐이다. 1.5도 올라가면 폭염 발생 빈도 8.6배, 가뭄 발생 빈도 2.4배, 강수량 1.5배, 태풍 강도 10%가 각각 증가한다고 한다.
기후위기시계는 인류의 공멸 우려가 큰 어두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상황을 인지하고, 해법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다들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좇느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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